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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말씀의 권위  
성경본문:58● 히브리서04:12-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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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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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 장 12절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리로다 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바른 지식을 가져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날 때 그것을 생명이라 구원이라 그 영원히 계속되는 것을 영생이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과 접선하는 첫째, 통로는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이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고, 말씀과 끊어졌을 때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줬습니다.

그러니까 곧 하나님은 우리를 상대하실 때 말씀을 가지고 상대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역사하실 때에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말씀과 하나님은 하나입니다. 말씀 따로 있고 하나님 따로 있고가 아니고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이라 그러면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니까 내나 그 권위가 하나님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무시한다면 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고, 어떤 사람의 말을 존대히 여기며 항상 그 말을 깊이 새기며 그것을 대우할 때 그 사람을 대우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버려버리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 어리석은 일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하면서 말씀을 버려 버리면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말씀은 하나라 이렇게 생각을 해서 말씀을 대할 때 나는 두려워 떨며 또 존대히 여기며 말씀을 대해야 되지, 말씀을 그냥 하나의 지식처럼 사람들이 발표한 그런 하나의 지식처럼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우리가 그래도 사람은 사람의 말 중에서도

유력한 사람의 말은 좀 더 조심도 하고, 좀 더 권위를 두고 상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이것을 쉽게 여기며 함부로 대하며 이것을 버려도 되고 이것을 짓밟아도 되고 이것을 내가 형편이 어려우면 이런 것이야 뭐 무시해도 되는 그런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버려버리고 하나님을 발로 밟았 버리면 그 사람은 반드시 큰 화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에게 발표한 하나님의 약속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밟고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을 버려버리고 말씀을 함부로 대하는 그런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온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을 대할 때는 어떻게 대하느냐? 말씀을 대할 때는 어떻게 대하느냐? 그것이 곧 하나님에게 대하는 막바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하나님이 모든 이 하나님 외에 존재에게 모든 (것을) 나타낼 때는 말씀을 가지고 나타냅니다. 또 일을 하실 때도 말씀을 가지고 일을 하십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 손을 가지고 발을 가지고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고, 손으로 자르기도 하고, 심기도 하고, 이렇게 손발을 가지고 일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을 때도 손으로 발로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지었습니다. 말씀하는 그것이 곧 말씀한 그것이 곧 하늘이 있게 했고 땅이 있게 했고  바다가 있게 했고 사람이 있게 했고 온 만물이 다 없는 가운데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이신데, 그 있도록 할 때 고 방펀이 뭐냐? 말씀이라.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없는 것을 있도록 창조를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요.

또 그 사람이(에게) 복을 주는 것도 사람에게 복을 주는 것도 말씀으로 복을 주십니다. 그 사람이 망하고 죽도록 하는 것도 말씀으로 망하고 죽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두렵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말씀은 곧 죽은 자를 살리고 산 자를 죽이는 것도 말씀입니다. 그만한 권능을 가진 것이 말씀이요.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그랬습니다. 죽은 자를 사릴시고. 로마서 4 장 17 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릴 때 무엇으로 살리느냐?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를 때는 무엇으로 일을 하시느냐? 말씀으로 하십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할 때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있으라 하면 있는 겁니다. 말씀으로. 또 죽은 것을 살릴 때도 말씀으로 살립니다. 나사로야 일어나라 이러니까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이 하실 그 명령을 내가 대신 명령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죽은 자여 살아라 이라면 살겠습니까? 안살겠습니까? 내게서 나오는 말은 아무런 권능이 없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한 고 말씀대로 하면 내나 그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

그래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겁니다. 너 저 죽은 자를 살리라. 살아라 라고 말해라. 예 믿고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럼 그 사람은 살아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게 곧 자기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말씀 속에 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리시고자 할 때 이렇게 꼭 말씀으로 일을 하십니다. 나사로야 살아라 일어나라 하면 죽은 지 나흘 이 되어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일어나라고 했을 때는 그대로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명을 받아서 그렇게 명령을 했기 때문에 내나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 하나님의 명령에 죽은

자를 살아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요. 또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데 항상 말씀을 가지고 일을 하십니다.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말씀을 상대할 때 바로 하나님을 상대하듯이 해야 돼요. 말씀은 별개고 하나님은 내가 두려워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일지라도 말씀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 쉽고, 그래서 차차차 말씀에서 타락이 되면 나중에는 하나님도 무시해 버립니다. 말씀이 점점 내가 무시하는 자가 되면 하나님을 나중에 무시하는 자가 되고, 말씀을 존대히 여기는 사람은 차차차자 그 사람은 하나님을 존대하게 여기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막바로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말씀을 상대할 때 우리가 두려워하면서도 또 그것을 존대히 여기면서도 또 그 말씀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살았고"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 여기서  말씀은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그랬습니다. 살아계신 말씀이라 살아있는 말씀이라 그 말이요.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듯이 그 말도 살아있는 말이고 하나님이 모든 전능으로 역사는 그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도 운동력이 있어, 운동력이 역사는 힘이 있어, 운동의 힘이 있어. 하나님이 모든 역사할 때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역사한다. 그랬습니다.

감동으로  역사를 한다. 역사하는 것을 감동으로 한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그 하나님이 역사한다 그 말이요. 하나님이 역사한다. 역사할 때도 항상 말씀으로 하십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우리가 하나님만큼의 이 권위를 가진 것으로 여기야 됩니다. 그 사람의 권위는 그 사람의 말과 같습니다. 왕이 너가 오늘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그러면 그 말은 바로 왕과 똑같은 권위를 가집니다. 내가 그 말이야 뭐 밟을 수 있고 버릴 수 있지만 그러면 그 말을 무시했기 때문에 그 뒤에 왕이 그 말의 모든 근거로 인해서 그대로 처리했기 때문에 그래서 말을 무시를 못하고 왕의 말을 무시를 못하는 겁니다.

왕이 "내가 너에게 관직을 주겠다". 주겠다는 그 말이 나왔습니다. 말을 들었습니다. 왕에게 직접 내가 대면은 안 했지만, 그 왕의 말을 전달을 받았다는 말이요. 내가 너에게 큰 장관 자리를 주겠다 이라면 그것이 곧 왕과 같은 권위요. 그 말은. 그러니까 우리는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듯 말씀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존대하듯 말씀을 존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듯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말씀이 우리를 사랑할 때 우리도 말씀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안되듯 말씀을 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귀 기울여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그 분을 떨어지지 않을려고 해야 되는 것처럼 말씀을 우리는 그래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았고"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성경에 하나님은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 그랬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생명이 있다 그 말이요. 그는 능력이 있다 그 말이요. 힘이 있다 그 말이요.  그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 창세기 17 장에 보면, 아브라함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해놓고, 내가 명년에 사라의 몸에서 내 아들을 줄 것이다. 있을 수 없는 나이가 이제는 구십구 세가 됐는데 그 약속을 하는 겁니다. 먼저 전능한 하나님이라  해놓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내나 전능한 하나님이시라 그 말이요.

또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전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있는 것이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속성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한다면, 전능하신 전능으로 하나님이 공의로 공의를 계약하시는 것이 첫 번째 역사요. 큰 역사요. 두 번째는 사랑으로 대속의 역사를 가진 것이 두 번째 역사요. 이 두 가지가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쌍벽을. 이 두 가지 큰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는 버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하나님이 역사하는, 말씀을 역사는 힘이 있어 그 말이요.

말씀을 역사는 힘이 있어.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없는 것을 있게도 하고, 있는 것은 없게도 하고, 산 자를 죽이기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어기면 그 말씀이 그 사람을 완전히 죽도록 만듭니다. 말씀이. 그래서 말씀은 심판할 때도 하나님이 말씀으로 심판한다 그랬습니다. 심판하기 전에 모든 것도 다 드러내는 것도 그 사람의 언행 심사를 다 드러내는 것도 말씀이 다 드러내고 또 말씀으로 그것을 심판을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전능의 말씀이요. 공의로운 말씀이요. 동시에 하나님은 또 사랑의 하나님이듯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제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주님을 이 피의 이 은혜로 나타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 피의 은혜로 나타나서 죽은 자를 살리는 이 근거를 다 마련하는 것이 주님의 피요. 주님의 피의 은혜는 살리려는 그 근거가 다 되게 하는 겁니다. 이 근거가 없으면 하나님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못 살립니다. 그 하나님의 법에 스스로 제약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이 범죄하면 죽는다 그래놓고 또 의가 있어야 산다고 했는데, 이 인생이 다 범죄를 핸 그 인생에게 하나님이 그 법을 무시하고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 법을 하나님 스스로에게도 다 제약이 되지. 하나님은 법을 어기도 되고 그래서 하나님 법을 어겨서 죄지은 자를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 법을 온전케 해서 그 법에 저촉이 안 되도록 그것을 다 법에 완성을 해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전능으로 살리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법을 온전케 하려고하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하나님의 법을 완성을 해야 되지. 그래서 예수님이 대신, 우리 대신 법을 예수님이 대신 완성한 겁니다. 이것을 대속이라. 이것은 피의 언약이라. 이 예수님이 대신 이 언약을 무시하지 않았고 끝까지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인하여 비로소 전능으로 우리 죄가 없어져서 우리를 살리게 된 겁니다.

죄를 없애는 것은 주님의 피로 우리 죄가 없어졌고, 죄 없는 자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으로 살린 겁니다. 죄가 없으니까 이제는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죄가 없으니까 이제 사망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죄는 사죄를 통해서 사죄의 공로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사망을 벗어나게 하는 겁니다. 또 예수님이 우리 위하여 대신 피로 칭의를 베푸는 것은 우리에게 이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연결이 되게 해줍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온갖 것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 칭의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 주님의 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주님의 피가 없다면 전능 가지고는 못 살립니다. 전능 가지고 못 살린다 그말이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 이 소리를 죄가 있는 나사로에게나 나오라 한다고 나올 수 있습니까? 살아나라 살아나라 한다고 살아날 수 있습니까? 죄가 있는데. 그럼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의 법과 충돌하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그 나사로의 죄값을먼저 다 받으시는 그 조건이 돼야 됩니다. 먼저. 그래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깨끗케 한 이 연후에야 사망에서 벗어나라 할 때 사망에서 벗어나고.

또 주님이 대신 부활하신 그 공로로 인해서 나사로아 살아나라 하면 살아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 이래서 우리는 주님의 피가 제일, 주님의 사랑이 제일 중하고 이것이 먼저고, 그 다음에 말씀으로 인한 전능을 가지고 살리십니다. 전능이 없다면 안 되고 주님의 피가 없다면 우리는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운동력이 있어, 역사하는 힘이 있어. 역사하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한다.

창세기 1 장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땅이 혼돈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땅이 혼돈한 그 땅에서 그렇게 땅이 혼돈하고 그래도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시라 그랬습니다.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 이 운행한다는 말은 역사한다 그 말이요. 모든 창조의 재료인 그 재료 창조를 해놓고, 그 재료 창조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 , 그 역사를 통해서 창조를 하는 겁니다. 재료 창조는, 이미 수면은 이미 재료 창조요. 재료 창조를 다 해놓은 위에다가 이제는 하늘을 짓는 그 창조를

하고 땅도 창조하고 빛도 창조하고 이 모든 것을 창조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운행한다는 말은 역사는 하나님이시라. 운동하는 하나님이시라. 움직이시는 하나님이시라. 감동하시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의 감동이라.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가지고 다 역사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있으라고 말씀으로 다 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다 하십니다. 말씀으로. 그래서 로마 백부장이 자기 부하가 병들어 죽게 생겼을 때 예수님에게 내 지금 보아가 이렇게 병이 들었나이다.

고쳐주옵소서 그랬다 말이요. 참 이 로마 병사 중에 한 사람인데도 그렇게 자기 부하를 아끼는 그런 백부장이었고 하나님을 비록 로마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존대하는 그런 사람이 이 백부장이요. 자기 부하가 아프니까 그 부하 쯤이야 아프든 말든 할 건데 예수님에게 내 부하에게 있는 병을 좀 고쳐주옵소서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가자 내가 고쳐줄게. 주님 올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으로만 하시면 됩니다. 나도 내 수하에 많은 종들이 있고 밑에 부하가 있는데, 그 뒤에 말씀만 하면 그들이 가서 다 해결합니다. 말씀만 하면 다 됩니다. 주님이 바로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내나 말씀이 내나 실제로 가서 하는 거와 똑같지 않습니까?

말씀만 하옵소서. 그래서 말씀하니까 바로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는 말씀을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와 동등한 그런 역사를 우리가 상대를 해야 되지,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는 우리가 함부로 대하고, 성경을 대할 때도 함부로 대하고, 성경책을 대할 때도 함부로 대하고, 우리 성경 말씀을 대할 때도 우리가 함부로 대할 수는 없습니다. 두려워 떨며 또 소망하며 그렇게 조심 조심 믿음으로 우리가 말씀을 대해야 되겠습니다.

그 말씀에서 우리는 내가 말씀을 믿고 행하느냐? 그 말씀을 믿지 않고 행치 않느냐? 그거 보면 딱 안단 그 말이요. 믿는 것은 자기 주관이 있기 때문에 자기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모릅니다. 그러나 행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보이는 믿음이 있어야 네 속에 있는 마음의 보이지 않는 그 믿음을 너는 안다고 해도 너도 그 믿음을 보일 때 참 믿음을 가진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보이는 행하는 믿음이 없으면 행함이 없으면 그런 믿음이라는 것은 너는 너 혼자 믿는 것이지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내가 행함을 보면서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그걸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행치 않는다면 주님 내가 믿음이 없나이다. 행할 때 내가 믿음이 있기 때문인 줄 알고 주여 감사합니다. 행하게 해주는 것은 주님이 믿음을 내게 주셨기 때문에 행해지지.

그래서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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