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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믿음의 위력 - (마귀에게 피동되지않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다 드려 자라가는 위력)  
성경본문:42● 누가복음17:05-06
1:146
    220818_목새.mp3 ()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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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 장 5 절 말씀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네

믿음을 더해 달라는 이 말씀은 참으로 의심없이 믿는 참된 믿음을 달라는 겁니다. 이 믿음은 다른 말로 겨자씨 믿음이라 그렇게 하나님이 가르친 것은 의심 없는 참으로 믿는 고 믿음만 가지면 겨자씨와 같은 그런 효력을 나타낸다. 씨가 흙 속에 들어갔을 때 나타나는 그런 놀라운 그런 위력이 나타나듯이 참으로 의심치 않고 믿는 고 믿음을 가지면 그런 위력이 나타난다 하는 것을 가르쳐서 비유로 여기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고 그랬습니다. 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지면 어떤 위력이 있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내 주관에 의심 없이 믿을 때 네 주관에 내 마음에 그  말이요.

마음에 위력이 나타납니다. 변화가 나타납니다. 어떤 변화가 나타난다고 했습니까? 마음의 근심 걱정 염려와 불안 두려움 낙심 이런 것이 다 사라지면서 평안이 옵니다. 한없는 평안이 옵니다. 또 거기에 대해서 모든 슬픔과 이런 것이 다 사라지고 기쁨이 샘솟습니다. 또 참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되면 그 사람의 소망이 넘치입니다. 또 그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해서 담대합니다. 이런 마음의 주관에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위력이 나타난다.

두 번째는 뭐라 했습니까? 뽕나무가 뿌리가 뽑혀 바다로 옮겨지고 또 심기우진다. 심기우지는 그런 순종을 하게 된다 했습니다.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행동 위력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 마음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에 지금까지 하지 못하는 그런 행동의 그런 위력이 나타난다. 뽕나무야 뽑혀라고 순종하게 된다. 뽕나무야 옮겨라는 이 말을 하나님 시킨 대로 순종하게 된다. 이 뽕나무가 심기우라고 명령할 수 있는 그 순종을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게 된다.

행위가 나타나는 겁니다. 자기 속에 지금까지 하지 못하는 그런 행위가, 겨자씨 믿음을 가질 때 그런 행위가 나타난다. 위력이 행위에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순종의 위력이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순종을 못했는데 정말 믿고 보니까, 이제는 마음의 위력이 나타나면서 행동에도 그런 순종하는 위력이 나타난다. 그러면 마음의 정말 믿으니까 그 마음의 말할 수 없는 그런 평안과 기쁨이 나오면서 동시에 이제는 순종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의 위력, 자 하나님 앞에 우리가 순종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다 합니까? 못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순종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 어려운 것을 가르쳐서 뽕나무로 비유를 한 겁니다. 뽕나무로. 뽕나무가 뽑히(라고 명령하)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까? 쉬운 일입니까? 손을 안 대고 뽕나무야 뽑혀라하는 그 뽑혀 나가는 일(을 명령하는 순종)이  어려운 일이요. 바다로 옮기(라고 명령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요. 심기우(라고 명령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요. 어려운 일 아니라 실은 불가능한 일이라. 다니엘이 기도하지 말아라 기도하면 사자 굴에 넣는다고 할 때 기도 계속하기가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어려운 거 아닙니까?

그래서 순종을 그렇게 어려운 겁니다. 우상숭배하지마라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봤을 때 그 하지 안하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또 자기를 다 드려 살아라고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말했을 때 자기를 다 소유에 있는 것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는 그 드리는 그 일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겨자씨 믿음을 가지면 그것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 위력이 되어지는 그 위력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것을 다 행하게 된다. 그 말이요. 이것이 위력이요. 즉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런 행위가 나타난다.

그 다음에는 그 순종할 때 그 만물이 다 그에게 순종을 한다. 만물이. 만물이라 함은 뽕나무가 뽑혀라고 명령을 하니까 순종하는 행동을 하니까 뽑혀나가는 뽑혀버리는 그런 위력이 나타납니다. 만물이다 순종을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의 실상을 이루어준다 그 말이요. 구원의 실상을 이루어준다. 그 실상은 우리가 못하는데 하나님이 구원의 실상을 이루어주는 겁니다. 뽑혀나가는 그 실상을 이루어주고, 심기우는 실상을 이루어주고 옮기는 그 실상을 이루어주는 겁니다. 고것을 구원을 얻는다. 영생을 얻는다 그럽니다. 이것이 위력이라.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하나님과 우리만 있다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 못할 자가 없고 믿지 못할 자가 없고 그대로 다 드리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지를 못하는 일이 생기며 왜 순종을 못하는 일이 생기며 그 구원을 자기가 받지 못하는 일이 왜 생깁니까? 그 이유가 뭡니까? 이유는 마귀 때문에 그런 겁니다.

마귀의 방해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 방해 역사가 없으면 다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는데, 믿어라 할 때 다 믿고 순종해라 할 때 다 순종하고 그러면 회개할 것도 없고 전부 그것은 다 순종이 되니까 막바로 그것이 다 구원이 될 건데, 하나님이 세상에 마귀를 두어서 타락한 천사인 마귀를 두어서 그 타락한 천사가 타락한 것처럼 우리도 타락하게 죄짓도록 만드는 그 역사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귀를 계산을 해야 되지 마귀를 계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믿으라 하면 믿으면 되지, 순종해라 하면 순종하면 되지, 다 드리리 하면 드리면 되지 뭐 어려울 거 뭐 있느냐? 그런데 하늘나라는 마귀가 없기 때문에 다 순종으로 살게 되고 믿게 되고 그렀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이 타락한 천사인 마귀가 와서 믿지 못하도록 순종하지 못하도록 드리지 못하도록 이렇게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붙들고 이것을 계산을 두고 이것을 싸워 자기가 이기지 못하면 그 사람은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자 그럼 마귀에 대해서 우리가 겨자씨 믿음을 가지면 마귀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까? 마귀에 대해서는 피동을 안받습니다. 마귀는 자꾸 피동을 줍니다. 피동을. 피동을. 즉 죄짓도록 자꾸 이렇게 피동시켜서 죄짓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피동한다는 말은 죄짓도록 한다 그 말이요.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불순종하도록 합니다. 하나님 모시고 살지 못하도록 불목하도록 합니다. 그래가지고 구원을 다 절단 내는 그 일을 합니다. 그러면 그 일을 할 때 무엇을 붙들고 그 일을 합니까? 세상을 붙들고 이러합니다. 세상을 붙들고 죄짓도록 만들고 의를 행치 못하도록 만들고 하나님과 화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그 일을 하는 방해 역사가 있다 그 말이요. 방해 역사가.  그래서 우리가 방해 역사인 이 대적을 바로 상대하여 이기지 못하면 구원 이루어지는 못합니다.

구원을 얻진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만점이 될라면 마귀에 대해서 그 피동을 안 받아야 됩니다. 자 마귀는 무엇으로 방해합니까? 세상으로 방해하는데 세상으로 어떤 방식으로 방해합니까? 미혹과 핍박이라는 이 두 방식으로 환란을 줘서 방해합니다. 이 환란을 주면 그 환란 때문에 이 기독자들의 순종을 못합니다. 믿지를 못하고 순종을 못하고 드리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 환란이라는 환란을 통과하지 아니하고는 결코 우리가 순종을 못하고 결코 구원을 얻지는 못한다.

그래서 마귀에게 피동이 되지 안해야 됩니다. 마귀가 환란을 가지고 핍박을 가지고 미혹을 가지고 슬슬 이렇게 미혹도 하고 핍박을 주니까 죄를 안 지을 사람이 없고 다 죄를 지어버립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해라 했더니만 의를 행치를 못하는 겁니다. 선을 행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따라갈려고 할려면, 이 마귀에게 피동을 안 받아야야 된다. 즉 환란과 미혹의 피동을 안 받아야 그 사람이 구원을 얻지, 그 피동을 받아버리면 안 된다는 거. 그 사람이 의를 하나 행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마귀에게 마귀에게 피동을 받았습니다. 환란을 통해서 미혹을 통해서 그러면 그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까? 못 얻습니까? 못 얻습니다. 왜? 마귀에게 패전이 됐기 때문에. 우리가 마귀에게 피동 안 되는 거 얼마나 이것이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환란과 핍박과 이 미혹에 피동이 안 돼야 됩니다. 자 이 피동이 안 되는 이 위력은 어디서 나옵니까? 겨자씨 믿음을 가지면 그 사람이 피동을 안 받습니다. 이 마귀가 어떻게 역사해도 피동을 전혀 안 받습니다. 피동을.

그러니까 우리가 의심 없는 이 믿음을 가지면 그 사람은 마귀가 어떻게 미혹을 해도 그 미혹에 요동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믿고 주님을 진정 믿고 주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로 믿게 되면 그 미혹이라는 것이 자기 한테는 미혹이 안 되는 겁니다. 그 핍박이라는 것이 자기한테는 조금도 자기에게는 순종의 영향을 못 줍니다. 그래서 겨자씨 믿음을 가지면 그 위력은 마귀에게 환란에게 피동을 안 받게 되는 그런 위력이 생깁니다. 굉장한 위력 아닙니까? 그 마귀에게 피동을 안 받고 하나님에게만 피동을 봤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에게 피동을 받아다 순종을 하게 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나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는다 또 거기에 풀무불에 넣는다고 이렇게 핍박을 하고 위협을 해도 겨자씨 믿음을 가져놓으니까 그대로 순종을 해버립니다. 거기에  피동을 안 받습니다. 피동을 안 받지, 하나님께 순종을 하지. 자 이 두 개가 굉장히 큰 것 아닙니까? 겨자씨 믿음을 가지면 마귀에게 피동을 안 받고 하나님에게만 순종을 합니다. 순종의 위력, 마귀에게 피동 안받는 위력, 이 위력을 우리가 가지기를 원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하지마라는 이 순종을 안 하는 자,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는 자, 하나님이 드리라  하는 것을 다 드릴 수 있는 자, 그 사람이 하나님께 피동된 자요.

마귀에게 피동되지 않는 사람은 마귀가 죄지으라 할 때 죄를 끝까지 안 짓는 자가 이게 마귀에게 피동이 안 되는 자요. 또 하나님께 순종해라 할 때 그 마귀의 피동이 안 되고 끝까지 순종을 할 때, 하나님 앞에 드리라 할 때 마귀는 드리지마라고 그렇게 미혹을 하고 핍박을 해도 그대로 다 드리는 그 사람이 마귀에게 피동을 안 받는 자요 하나님에게 피동을 받는자 라. 순종을 받는 자라. 이것이 겨자씨 믿음의 위력입니다.  

그 다음에 행동이 아니라 실제로 그 뽕나무가 뽑혀서 옮겨지고 심기워지는 그 일이 나타난 겁니다. 약속대로 하나님이 구원의 실상을 이루어주는 그 위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 위력이.  그 위력이. 그것은 하나님이 만물을 붙들고 역사를 하면 그것이 다 우리 속에 다 심기워주는 겁니다. 심겨준다. 하나님이 심겨주는 겁니다. 죄 없는 기능을 심겨지고 의로운 기능을 심겨주고 하나님과 화친된 기능을 심겨주고 충성의 기능을 다 심겨줘서 그 사람이 구원이 온전하게 되도록 하는 겁니다. 자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이 자라는 것이요. 이것이 자라나는 것이요.

자 이렇게 자랄라면 하나님께 순종이 있어야 자라고, 순종이 있어야 이 심신의 기능이 구원을 얻고 그 말입니다. 그다음에 순종할 때 여러 가지 마귀의 이런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즉 환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피동되지 아니하면서 순종을 할 때 그 때 그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다. 즉 모든 만물이 다 응종을 해서 실제로 심신의 기능이 우리 속에 다 심기워지는 그런 일이 된다. 하는 겁니다. 그런 일이 된다. 그러니까 심신의 이 구원이라는 것은 그 기능 구원이 우리 속에 심겨질라면 정말 믿는 요 겨자씨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마음에 의심 없이 믿는 그 믿음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서 마귀에게 피동을 안 받고 하나님에게만 피동을 받는 그 위력이 그 속에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그 사람 속에 심신의 기능이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자 그러면 마귀의 모든 역사는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필요가 없습니까? 필요하단 말이에요. 마귀는 우리가 죄짓도록 만들고 의인으로 걷지 못하게 만들고 드리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하는 데도 그 방해가 왜 필요할까? 그런 방해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했을 때 하고, 그런 방해가 없을 때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하고는 구원이 되고 안 되고의 마지막 결과가 되는 겁니다. 그것이 기준이 되는 겁니다. 환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자, 환란이 하나도 없는데 거기서 순종하는 자하고. (차이가 심히 큼니다) 환란이 있을 때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를 다 드려야만 그 순종이 되지 자기를 드리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거, 자기를 드리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거, 자기를 부인하지 안해도 순종되니것. 그런 것은 그 순종은 상을 얻지 못합니다. 다 드리고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면서까지 순종이 되니까.

그 사람은 이 대적과 싸워 이기게 된다 말이요. 이긴 자에게 주는 것이 상이요. 그것이 면류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 마귀의 대적 역사가 있고, 그 대적과 싸워 이겼을 때 거기에 피동이 안 됐을 때 비로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상을 주십니다. 구원은 상으로 주십니다. 싸워서 이겼을 때 얻는 것이 상이요. 그러면 환란은 필요합니까? 필요 없습니까? (꼭 필요합니다). 환란이 있을 때 그 사람이 이제 순종하면 나는 구원되겠다 이래서 환란은 꼭 필요하니까 구원을 얻을 사람은 구원의 실상을 자기가 받은 사람은 순종이 제일 중요하지만은 그러나 환란 속에서 순종을 해야 된다. 이겨야 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환란이 필요하니까 환란이 좀 와야 되는데 환란은 내게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또 마귀를 통한 역사다. 그래서 환란이 오면 그걸 아는 사람은 기뻐합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이 오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랬습니다. 환란이 왔을 때 그것을 피하고 싶고 그것이 없으면 좋겠다 (하는) 그 사람은 구원을 얻지는 못합니다. 이 마귀의 모든 방해 역사, 즉 죄를 짓게 하는 역사, 의를 행치 못하게 한 역사, 다 드려 살지 못하게 한 역사, 이런 역사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싸워서 이겨서 거기에 피동되지 아니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환란이 필요하다는 거, 거기에서 우리가 피동이 안 돼야 된다는 거, 거기서 모든 것들을 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다 드리며 사는 이 사람이 될 때 구원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구원의 이런 과정이나 조건을 똑똑히 아는 사람은 환란을 기뻐합니다. 왜 기뻐합니까? 그 속에서 순종하면 구원이 되기 때문에 환란이 없으면 구원이 안 됩니다. 환란이 없으면.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서 나올 때도 환란을 통해서 구원을 했고 광야라는 환란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하나님은 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는 구원도 환란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도 광야의 환란을 통해서.

그래서 환란을 만났을 때 피동이 안 돼야 됩니다. 피동이 안 되면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 그 순종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뭡니까? 하나님이 하지마라는 것 안하는 이 거룩한 요 순종이 돼야 되고, 거룩의 행실이 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하라는 거, 의의 행실이 되어야 되고, 하나를 더 말 한다면, 선한 행실이 돼야 돼요. 경건이라 그러기도 합니다. 이 세 가지 행실의 순종을 할 때 이때 순종할 때 자기 있는 것을 다 드려야 됩니다.

안 들이고 자기는 것을 드리지 아니하고 내 소유나 몸이나 생명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아니하고 그것을 세 가지를 한다 해도 온전하게 되지는 못합니다. 다 들여서 해야 됩니다. 드려서 하는 것을 충성이라고도 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뽑고 옮기고 심고 하는 요 옮기는 것은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다 드리라. 뽑는 것은 하나님이 하지 말하는 거룩한 행실을 걸어라 그 말이요. 하나님이 심으라 한 말은 해라는 뜻이요. 의와 선을 행해라 그 말이요. 의와 선을 행하고 거룩한 행실을 하므로 하나님이 하지마라는 것 안 하는 그 사랑, 하라는 거 하는 그 사람, 이제는 옮기는 것은 드리는 겁니다.

땅에 있는 것을 너는 하늘에 쌓아두라. 그러면 동록이 피지 못하고 영원히 너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된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력은 마귀에게 피동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 피동이 되는 겁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자라나는 것이고. 그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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