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설교읽기설교듣기양의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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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성경본문:55● 디모데후서03:14-15
1:26
    220725_월새.mp3 ()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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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 장 14 절 말씀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예

"그러나" 라고 하신 것은

앞에 있는 이런 일이 있지마는 그 반대로 그 말입니다. 그런 일이 있지마는 "그러나" 그 반대적인 내용이 나올 때 "그러나" 그럽니다. "그러나" (라는 단어)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고 하니 믿는 자를 믿는 자에게 핍박하는 핍박이 있고 믿지 못하도록 하는 핍박 역사가 있고 또 하나는 믿지 못하게 하는 속이는 미혹의 역사가 있다는 겁니다.

그 믿는 사람이 핍박이 없이 사는 것이 좋지만은 하나님이 핍박은 필요해서 주시고, 또 미혹을 받지 않고 (믿고) 사는 것이 좋지만은 하나님이 미혹을 허락을 하셔서 미혹하는 이 일이 되도록 해서 믿는 일을 방해하는 일을 합니다. 이 믿는 일을 방해하는 것. 믿으면 구원이 되니까 믿지 못하도록 마귀로서는 방해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또 계산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걸 허용을 한 겁니다.

왜 허용을 했느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허용을 했고, 우리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에 허용을 했지, 그러니까 기독자가 받는 핍박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고 미혹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용을 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핍박이나 미혹을 받으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내게는 유익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일단은 기쁘고 감사해라 그랬습니다. 핍박이 올 때 감사하고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러니까 핍박이나 여러 어려움이나 환란이나 환란이라 함은 핍박이나 미혹을 다 합쳐서 환란이라 그럽니다. 핍박 환란이 있고 미혹 환란이 있는데 그것이 오니까 그냥 믿음이 다 깨져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정작 그것이 없으면 좋겠다. 자꾸 핍박이 오고 미혹이 오니까 거기에 다 넘어져 버리고 믿음이 다 깨져버리니까 그것이 없는 것이 낫지 않느냐? 없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 되나 그러나 하나님은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것을 주시기를 바라는 겁니다. 줘서 내 믿음이 다 파괴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나 그랬습니다. 그 핍박과 환란을 통해서 네 믿음을 견고케 하기 위함이다. 네 믿음을.

참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말입니다. 핍박이 오면 믿음이 깨지는데 왜 믿음이 더 견고하게 됩니까? 핍박이 와도 믿음이 깨질 수 있는 믿음 같으면 온전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는 구원을 못 얻는디. 온전한 믿음이 돼야 구원 얻는데, 온전한지 온전하지 않는지 무엇을 보고 아느냐? 핍박을 보내보면 줘보면 안다 그말이요. 핍박을 떡 하니까 믿음이 깨져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믿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핍박을 안 주어놓으면 이 믿음 내가 믿으니까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믿음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구원을 못 얻는 믿음인데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이거는 충분히 이래 내가 믿으니까

이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믿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믿음은 그 믿음으로는 구원을 못 얻는 믿음이다 하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환란을 줍니다. 그래서 환란 떡 만나보니까 믿음이 바싹 깨져버립니다. 아! 이 믿음 가지고는 내가 구원을 못얻는 믿음이었구나! 신사참배 오기 전까지는 다 교계에 아주 우뚝우뚝한 사람들 다 믿는 사람이고 다 가르치는 목회자들이고 다 신앙의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은 다 구원을 얻을 줄로 본인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은 정작 신사참배라는 그 환란이 오니까 다 버려버렸다 말이요. 다 신사참배 다 해버립니다.

그것을 보면서 환란을 통해서 내 믿음이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그 뒤에 알게 되는 겁니다. 요것이 하나 있고 또 핍박을 보냈을 때 그 핍박이 오면 믿음이 흔들흔들하고 넘어질 라하니까 야 이거 큰일났다. 내 믿음에 더 힘을 써서 믿음을 좀 더 견고케 해야 되겠다 하고 힘을 막 씁니다. 막 쓰다 보니까, 내 믿음의 잡탱이도 알게 되고 내 믿음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더 매달리고 매달여서 믿음은 견고케 하기 위해서 기도에 힘쓰고, 성경 읽는 데 힘쓰고, 듣는 데 힘쓰고, 회개하는 데 힘쓰다 보니까, 믿음이 환란을 이길만한 믿음으로 변화가 돼버립니다.

그러니까 핍박을 통해서 미혹이라는 환란을 통해서 그것 때문에 내 믿음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약에 그 때에 핍박이 안왔다면 그것이 자기 구원이 될 줄 알고 안심하고 있다가 마지막 주님 재림할 때 그때는 통통 다 비어버리고 아무것도 아니라 하는 것을 그때 알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전에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 이 땅에 거하는 동안 아! 내 믿음은 구원을 구원에 이를 만한 믿음이 아니구나 이것을 아는 이 수익은 환란이 오면 얻게 됩니다.

또 하나는 믿음이 연약한 그 사람이 환란이 오면 그때 환란을 통과할 수 있도록 그 믿음을 전적으로 힘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보다 더 힘을 쓰게 됩니다. 더 쓰다 보니까,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환란을 이길 만한 믿음이 됩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이 된 그 사람이 구원을 이룰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환란은  오면 슬퍼하거나 낙망하거나 싫어하거나 그러지 말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그것을 원하고 그리해라. 환란의 이런 좋은 면을, 우리에게 그 숨은 이 면을 가르쳐 주십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믿음의 시련이" 그랬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시련이라는 것은 믿음은 시련시킬 때 마지막 시련이 와도 이기는 고 믿음을 인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시련은 자기의 믿음이 온전치 못하다는 거 이걸 알게 하는 첫 번째가 하나 있고, 그 믿음을 온전하게 힘써서 만들어가는 고 계기가 되는 것이 다 환란입니다. 그러니까 이 환란이 오면 그 사람이 믿음이 없던 자가 믿음이 온전한 믿음으로 다 변화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수입을 계산하고 그것을 위해서 환란을 주십니다.

주실 때 그 환란이 일단은 환란을 받으면 고난을 받아야 되니까, 주님은 또 그것이 마음이 아프다 그 말이요. 그래서 천년을 천년이 하루 같은 이 심정을 그것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를 위해서 환란을 줘서 참 믿음을 갖도록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은 맞고 우리를 위하는 건 맞는데, 한편으로는 그 환란 속에서 어려움을 견디어야 되고 그것을 이겨야 되니까

고 때는 고통이 환란을 통과할 때 오는 믿음을 만들어가는 그 고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마음에 안스럽다 그 말이요. 그걸 가르쳐서 "천년이 하루 같은 고 심정은"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꼭 육신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 듯 (그 자녀의) 앞날을 위해서 이 회사를 물려받을려면 네가 제일 말단으로 네 신분을 속이고 가서 거기서는 온갖 고난 다 받고 제일 이런 훈련을 좀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나중에 그 실력을 쌓아서 너는 이 사업을 물려받을 수 있다. 뜻도 알고, 다 좋아서 부모도 그걸 그렇게 하고, 본인도 그걸 용납하여 아 참 감사합니다.

뜻도 알지만은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 그 말이요. 부모가 볼 때는 마음에 안쓰럽다 그 말이요. 비록  환란은 저를 위하는 것이지만 그러니까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우리가 환란받을 때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은 내 몰라라는 하나님이 아니고 내보다 더 안쓰러워 하신다. 더 마음에 아파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큰 구원을 이루기 때문에 주님은 그것을 끝까지 그렇게 하시고 우리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늘 감사하고 그래서 그렇게 환란을 상대할 때 내 믿음이 어찌 되느냐? 내 믿음의 견고함이 되어서 구원을 얻는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우리의 소원이라. 소원이 될 때 그것이 온전한 구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환난이 오고 핍박이 오고 마혹이 쏟아져도 그러나 그러나 너는 배우고 그런 일이 있지마는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면 참 믿음에 거하면 된다.

믿음에 거하라. 믿음에 거하면 그 환란이 너를 다 믿음 없는 것을 알게해서 속지 않고 믿음이 없는 너를 온전한 믿음으로 그 환란을 통해서 자아간다. 그러니까 너는 이런 환란이 오거들랑 그런 환란에서 낙망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어떡하든지 그 믿음의 그 환란에서 기쁘고 감사해라. 왜? 네 믿음은 견고케 하는 일에 도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환란 중에서 너는 배워라. 그 환란 중에서는 사람이 어려움을 만나면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그 길을 위해서 힘쓰게 됩니다.

믿음을 위해서 배우라. 믿음에 대해서 배워서 그 믿음을 이전보다 더 확신한 믿음을 가져라.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 확신한 일에 떡 거하고 나니까 이전보다 더 믿음이 더 상승이 되고 견고케 되니까, 이제 환란이 와도 그 환란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환란에 피동되지 않는 그런 믿음이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이 다 어려움을 많이 겪고 통과하면 그 사람이 좀 강해지고, 그 사람이 좀 이렇게 견고해지고, 군대 생활하기 전과 하고 난 뒤에 그 사람이 어려움을 상대할 때는 조금 달라집니다.

부모 밑에서 그냥 밥은 먹고 그냥 편안하게 생활하는 그 사람과 군대에 가가지고 부모도 없이 그 외지에서 온갖 자기를 다 부인하고 다 자기를 다 죽이야 되니까, 그 고통을 통해서 고통이라는 것은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를 수가 있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환란은 손해가 아니고 미래를 보면 그 환란을 통해서 얻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젊어  고생 사서 한다"는 말이 젊어서 고생이 손해가 아니라 그것이 자기한테는 그 이후의 생활에 큰 자양분이 되어서 너를 견고케 하고 너를 모든 데서 참 강하게 하고 너를 어떤 형편에서도 너는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기독자에게는 이 모든 환란이라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그래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전부 다 환란을 기쁘게 여기라고 성경은 수없이 가르칩니다. 기쁘게 여기라.

자 이런 비밀을 우리가 알 때 환란을 통하여 믿음이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참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환란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 환란을 만나거든 낙망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그 일에 힘을 쓰라. 그때 너는 믿음을 온전한 믿음으로 또 너는 배우고, 그 배워서 그 믿음이 확신한 그냥 믿음이 아니라 확신한 믿음에 거하면 그 환란을 이기며 이겼을 때 오는 그것이 인내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인내의 사람이 될 때 그때 그 사람을 참사람이라 온전한 사람이라. 그 사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온전히 될라면, 믿음이 온전히 될라면 환란을 통해서 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환난 중에 배워서 너는 온전한 믿음이 되도록 해라 하는 겁니다. 온전한 믿음.

자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가져야 될 제일 중요한 것이요. 믿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살이 동안 하나님의 복 받는 길이요. 또 이 세상을 떠나 사람은 반드시 한 번 죽게 되고 죽음 넘어 심판이 있게 되고 심판 너머 영원한 하나님의 보응의 영원한 그 영생의 보응을 받게 되는 것이니까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이 믿음이 제일 가치가 있고 제일 자기한테 유익이 크기 때문에. 누가 너에게  빌딩을 하나 주겠다. 이 큰 사업을 하나 너에게 물려주겠다. 그것도 좋지만 그 보다 더 큰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을 얻는 것이 그것보다 훨씬 더 수입이 크고 더 크다. 금생의 것과 내세의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믿음에 거하라. 그래서 문제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이 땅에 하나님의 능력과 복을 받느냐? 못 봤느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영생을 이 세상 너머 그 영생의 구원을 받느냐? 못 받냐? 이것이 결정되니까. 돈이 있느냐 없느냐 그의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에게 실력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영광이 있느냐 없느냐 그게 문제가 아니고, 많은 사람이 자기를 따르느냐 안 따르느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이요. 그보다 더 가치 있고 더 능력이 있고 하는 것이 다 믿음입니다. 믿음을 제일 가치로 두는 사람은 그 사람은 금생과 내세에 하나님의 능력과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자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배워라 그랬습니다. 배워서 믿음을 너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라. 자 믿음은 어디에서 배웁니까? 믿음은 어떻게 해서 믿음이 장성이 됩니까? 배워서. 여기에 그런데 배울 때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그랬습니다. 자 우리는 믿음은 어디서 배웁니까? 어떻게 배웁니까? 우리 경험으로 우리가 먼저 봐야 됩니다. 자기 생활로 경험으로 생각을 해서 먼저 계산해 보고, 그 다음에 성경이 가르치는 것도 한번 여기에서도 살펴보고, 경험으로 볼 때는 믿음 없는 자가 안 믿는 자가 믿을 때는 사람을 통해서 믿음을 표입니다.

친구를 통해서 선배를 통해서 또 설교자를 통해서 그때 믿을 때 들어서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뭔지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뉘게서 배웠느냐? 사람에게서 배웁니다. 믿음을 사람에게서 첫째 배웁니다. 이 사람은 단독의 사람이 아니라 선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통해서 또 사도를 통해서 지금 말하면 먼저 믿은 선생님들, 먼저 앞서 믿은 사람들 통해서 믿음을 배우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자기한테 참 선배가 있고 자기 친구가 있고 자기 후배가 있고 또 이런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이 뭔지를 조금 배우다가 또 교회에 가서 목사님한테 조금 더 배우다가 또 자기한테 필요한 그 모든 이런 거 저런 사람을 통해서 먼저 배웁니다. 어릴 때는 다 그렇게 배우고 출발은 그렇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배웁니까? 그 다음에 성경을 통해서 배운다는 말이요. 그 다음에는 성경을 통해서 배웁니다. 이제는 직접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보니까 말씀도 듣지만은 들어서 아는 것도 있지만 성경은 읽어보니까, 그 성경을 통해서 배운다 그 말이요. 성경을 통해서 배운 것이  그것이 다가 아니라 마지막은 뭡니까? 성령을 통해서 배웁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직접 비옵니다. 그때는.

이 세 가지를 통해서는 배우라. 확신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배워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듣는 일에 힘을 쓰고, 읽는 일이 힘을 쓰고, 또 그것을 하나님이게 배울 수 있도록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하는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이 성령의 감동인데 하나님에게 배울 수 있도록 그 말씀을 묵상하는 데 힘을 써서 또 이것을 간절히 구하는 기도하는데 힘을 쓰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배우게 하고 선지사도를 통해서 배우게 하고, 성경을 통해서 배우게 하고, 하나님이신 성령을 통해서 배우게 합니다. 그럴 때 고 믿음이 온전케 됩니다. 요 세 가지를 계속해야 됩니다.

그래서 "뉘게서 배웠으며" 하고 여기서 표시를 했지 않습니까? 우리가 배우는 통로가 먼저 믿은 선지 사도들, 앞선 믿음의 사람들, 우리는 백 목사님과 같은 그런 분을 통해서 먼저 배웠습니다. 배우다 보니까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그 다음에는 성경을, 원본인 성경을 통해서 또 배우고 또 그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또 배우고 그렇게 자꾸 배우는 사람은 믿음의 확신이 됩니다. 그 확신이 점점 굳어지고 견고하여져서 자라갑니다. 그 믿음이 자꾸 자라간다 그 말이요. 믿음은 자라가야 되고, 믿음의 자라감에 따라서 구원도 자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믿을 때와 그 다음 믿을 때와 그 후에 믿을 때가 천지 차이 아닙니까? 자기 처음 믿을 때 신앙이 어떠하며, 10년 전의 신앙이 어떻하며, 1년 전에 신앙이 어떻하며, 지금의 신앙이 어떻하며 자기가 깨닫고 알고 믿는 것이 그 범위와 높이와 길이와 깊이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 자라가도록 하는 것이 배우는 겁니다. 뉘게서 배우며. 뉘게서 배우며.  성경을 통하여 배우고, 사람을 통해서 배우고, 성령을 통해서 배웁니다.

자 (이제) 배울 때 무엇을 배워야 됩니까? 무엇을 배웁니까? 배울 때 무엇을 배웁니까? 믿음을 배우는데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지 다른 믿음은 아무리 배워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기독자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배워야 되지, 믿으라 이 말은 예수를 믿으라 그 말합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뭐냐?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신 사활의 대속을 믿으라는 뜻이요. 사활의 대속을 믿으라. 예수님의 죽으심을 믿고 예수님 부활하심을 믿으라. 죽으심은 사죄 칭의 화친을 믿고 이것을 주신 것을 믿고, 또 너에게는 부활로 인한 영생의 소망을 주실 것을 믿는 겁니다. 이것을 믿도록 해라. 안 믿고, 이걸 안 믿고,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하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이 공로로 그냥 주셨으니 나는 받는 거 아닙니까? 꼭 믿을 필요가 있습니까?

자 하나님이 우리가 안 믿는데도 주는 그 구원도 있고 반드시 믿어야 받는 그 구원도 있습니다. 안 믿어도 받는 구원도 있고 반드시 믿어야 되는 구원도 있습니다. 믿어야, 믿으라 믿으라 할 때 받는 그 구원은 건설구원이요. 안 믿어도 받는 구원은 기본구원이요. 이 기본구원은 우리가 믿고 안 믿고와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 죽어 있는 영과 심신의 형체는 죽어 있는 상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바깥에서 진리와 성령을 주어서 대속을 입혀서 그냥 살리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살아난 영과 그 영과 그 성령과 합쳐서 이제는 심신을 살릴 때는 그는 자기가 힘을 써서 노력을 해야 되도록 한 겁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믿는 요 믿음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이렇게 중요하다 이것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겁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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