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설교읽기설교듣기양의 순종

Untitled paikist.net/00/board/09(3-)afreeca/upfile/        pkist.ivyro.net/up/2017/

  ★★지난 설교 듣기 및 다운                        

 

 듣기 요령 -- 보이는 MP3파일을 클릭하면됩니다 
 다운 요령 -- 보이는 MP3파일을 클릭하고 / 아래의 다운 아이콘에 마우스 오른쪽 / 다른 이름으로 대상 저장을 클릭

                                초기화면                              찬송가 듣기 및 다운
■ 성경본문별                                                                                                                                                                                        
■ 날짜별                                                                                                                                                                                             

09 년

      3. 4. 5. 6. 7. 8. 9. 10. 11. 12

15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21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0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6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22 년

 1. 2. 3. 4. 5. 6. 7. 8. 9. 10 월

11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7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공1

 

12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8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공2

 

13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9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공3

 

14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20 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공4

 


                                                                                                                                   목록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하라 - (어린 자와 장로의 의무)  
성경본문:59● 야고보서05:14
1:27
    220921_수새.mp3 ()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


야고보서 5장 14 절 말씀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네

의로 인한 고난이 와도 기도를 하고 죄로 인한 징계의 고난이 와도 기도를 해서 의는 계속되어지도록 해야 됐고 죄는 회개하도록 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할 때 반드시 방법은 저 때는 즐거워하며 즉 기뻐하며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이 그것이 기도의 기본 자세입니다. 즉 고난을 즐거워하면서, 즉 기뻐하면서, 기뻐한다는 말은 그것이 내게는 꼭 필요한 것을 주셨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내게 이렇게 필요한 것을 내게 주셨다. 고난이 내게 꼭 필요한데 이 고난을 주셨고 이 고난을 통해서 내가 이렇게 존귀한 자가 되고, 고난을 통해서 모든 사망에서 벗어나는 이런 사람이 되니 참 이것이 즐겁고 좋다 이렇게 얘기(말)하면서 이것을 주신 것은 나를 사랑해서 하나님이 내게 고난을 주신 것은 사랑해서 주셨으니까 주님 앞에서 감사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이 고난에 대해서 기뻐하면서 이 고난을 주신 주님에게는 감사하면서 그렇게 하면서 기도를 할 때 그 기도가 바른 기도입니다. 고난에 대해서 그냥 낙망하면서 슬퍼하면서 근심하면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요.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그 고난을 기뻐하면서 고난을 주신 주님이 날 사랑해서 주셨으니까 주님에게 감사하면서 그래 하나님 앞에 "주님! 이 고난을 내가 이 의의 고난은 꼭 내가 받아서라도  의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 "이 징계를 내가 버리지 아니하고 징계를 통하여 내가 이제는 더 이상 징계를 받지 않도록 회개할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 이 징계의 고난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의의 고난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기도해라 하는 것이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기도의 자세입니다.

두 번째 기도의 자세는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교회마다 다 장로의 직분이 있어서 장로라. 장로라는 것은 좁은 의미로는 장로의 직분을 가진 사람이 장로입니다. 좀 더 넓은 의미는 장로의 직분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신앙에 앞선 사람을 장로라 그럽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선생이라 그럽니다. 선생이란 말은 먼저 난 사람이, 즉 먼저 배운 사람이 선생이요. 신앙이 먼저 시작해서 신앙에 앞선 사람이 선생이요. 어느 교회이든 가정교회든 또 사회교회든 나라 교회든 세계교회든, 교회라는 것은 신앙이 앞선 자와 뒤선 자가 같이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다 똑같이 신앙이 없는 자가 아니고 다 똑같이 신앙이 똑같이 있는 자가 아니고 신앙에 앞선 자와 뒤선 자가 섞여 있는 것이 교회라하는 겁니다. 가정도 그 안에 가정의 구성원들은 힘이 있는 자와 힘이 적은 자가 섞여 있는 것이 가정입니다.

육신의 힘이 더 큰 자는 부모는 육신의 힘이 아이들 보다 더 큽니다. 아이들은 육신의 힘이 더 약합니다. 그러면 그 과정은 어떻게 꾸려나가야 합니까? 육신의 힘이 있는 자가 육신의 힘이 약한 자를 위해서 그를 돌보고 그를 위해서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기도도 하고, 그를 위해서 돌보기도 하고, 그를 위해서 모든 일을 이렇게 희생도 하고, 수고도 하고, 이러면 그 가정은 좋은 가정이 들입니다. 그러면 자녀는 자라갈 것이요. 그러나 그 반대가 돼서 신앙이 있는 사람이, 즉 힘이 있는 사람이 내 몰라라. 나는 내 위해서 살겠다.

내만 자기만 챙기면 자녀들은 그냥 거기서 어린 자녀들은 스스로 해결을 못 하니까 결국은 자라지를 못합니다. 자라지는 못한다 그말이요. 그래서 육신으로 기준으로 잡는다면 이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자기가 희생이 돼도 다 위합니다. 내가 못 먹어도 자녀는 먹어야 되겠다. 내가 힘이 들어도 자녀만은 힘이 덜 들게 해야 되겠다. 왜? 어리니까. 어린 자는 그렇게 해야만 자랄 수 있으니까. 어린 자에게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맡길 수는 없습니다.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있어도 어리니까 아직 자랄 때까지는 자꾸 배려를 하고 위하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신앙도 같은 겁니다. 신앙도 신앙의 앞선 자를 장로라, 즉 가정에서는 부모가 장로가 되고 아이들은 그 어린 자가 됩니다. 교회에서도 신앙이 앞선 사람은 장로입니다. 반사 선생님은 주일학생에 대해서는 장로의 입장입니다. 앞선 자가 되어 있습니다. 또 교회도 아직 직분이 없는 사람과 직분이 있는 사람은 그래도 직분 있는 사람은 신앙이 조금이라도 앞서니까 직분을 줘서 직분을 하도록 합니다. 또 무슨 이런 구역장이나 무슨 권사나 이런 직분도 신앙이 앞서니까 신앙을(이) 먼저 앞선 자로 세워서 그들의 식구를 다 이렇게 거느리도록 해서 이렇게 구원이 되도록 하는 겁니다.

또 전도사나 또 목사나 이런 직분도 신앙이 앞선 면이 있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 분들도 다 처음에는 신앙이 없다가 앞선 자들이 자기를 살펴주고 도와주고 가르쳐주고 참아주고 권면해주고, 그렇게해서 자기도 신앙이 앞선 자가 된 겁니다. 자기도 먼저 신앙이 앞선 자의 도움을 받아서 자랐고, 자랐으니 이제는 자기도 이제는 뒤선 자를 위해서 그렇게 할 때 그러면 신앙이 자꾸 유지가 됩니다. 세대는 지나도 신앙은 유지가 됩니다. 그런데 앞선 자가 뒤선 자들을 위하여 기도도 안 하고 뒤선 자를 위해서 수고도 안 하고 그러면 그로서 신앙이 끊겨 버립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장로의 입장에 서서 신앙이 어린 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먼저 모든 것들을 수고해야 되고 앞장서야 되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또 신앙의 어린 사람은 그 신앙이 앞선 사람을 존대하고 그것을 잘 받아서 끝까지 따라갈 수 있도록, 거부하지 안하고 그걸 다 존대하면서 따라갈 수 있도록 해야 그럴 때 그것이 자랍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이 꼭 교회에 있는 신앙이 앞선 자를 내는 것은 교회는 이렇게 해서 자라가는 것이고, 가정도 이렇게 해서 가정이 유지가 되는 것이고, 그 어린아이가 이제는 자라면 그 가정에서 어린 아이가 육신으로 기준을 잡는다면 자라면  장성이 됩니다.

그때는 자기가 이제는 또 어린 아이를 또 돌보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자기가 결혼하면 또 어린아이가 자기 밑에 또 납니다. 나면 옛날에 자기가 돌봄을 받은 것처럼 자기가 어린아이를 돌보는 겁니다. 그런데 그거를 하나의 법으로 정해놓고 그렇게 해야 된다 법으로 정해놓고 한다면 그렇게 다 하지를 못합니다. 너가 그렇게 어릴 때 배려를 받았고 그 앞선 힘있는 자들이 너를 돌봐서 자랐지 않느냐? 너도 그러면 어린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되지 않느냐? 이걸 하나의 법으로 강제로 했다면, 그 사람들은 다 그것이 괴로운 일이고 그렇게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이 힘이 들어서 그냥 이렇게 될 것이나 하나님은 자기 자녀에 대해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겁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줘 놓으니까 신앙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자기의 자녀를 위해서는 육신을 아끼지 아니하고 다 양보하고 배려하고 위하고 수고하고 땀 흘리고 자기는 희생해도 자녀만은 위해 주고, 그래가지고 그것이 유지가 되도록 (합니다). 이 동물들도 그런 지력이 없어도 그걸 본능적으로 줘놓으니까 자기 새끼를 위해서는 전부 다 희생을 합니다. 그래서 그 종족이 유지가 되고 그것이 번성이 되고, 세대가 지나도 이렇게 다 이어져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도 우리 신앙의 세계도 그런 겁니다. 먼저 어린아이는 어린 자는 신앙이 어린 자는 신앙이 앞선 자의 돌봄을 받아서 자라는 것이고, 또 이 신앙이 이제는 앞서게 되면 이제는 신앙이 어린 사람을 돌봄으로써 또 어린 신앙이 자라도록 합니다.

우리는 다 어린 신앙이 되었다가 또 돌봄을 받는 어린 신앙이 되었다가 또 돌보는 이런 장로의 신앙이 되는 겁니다. 자기가 한 20년 전의 자기를 생각하고 30년 전의 자기를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요. 그때는 내가 돌봄을 받아야 될 신앙이었고 지금은 내가 다른 사람을 돌보아야 될 신앙이라. 돌봐야 될 신앙이 돌보지 못하고 내가 돌봄을 받아야 될 신앙이 돌봄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 신앙이 자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앞선 사람은 신앙이 뒤선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을 하면서도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항상 먼저 기도를 해야 됩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신앙이 어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래야 그 어린 사람은 유지가 되고 자라갈 수가 있다 그 말이요.

그래서 여기에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신앙이 앞선 자를(에게) 기도를 부탁해서 내가 어리니까 당신은 신앙이 앞서니까 내 어린 이것을 좀 해결해주옵소서, 이렇게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났을 때, 또 혹은 이런 죄악으로 이런 죄악으로 인한 징계의 고난을 받을 때 내가 이 회개할 수 있도록 내가 이 모든 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을 하고, 또 신앙에 앞선 사람은 그걸 보면서 기도를 해줘야 되는 겁니다. 부모가 자녀가 힘이 없어서 일을 못하고 병들어 병석에 누워 있고 또 힘이 없어서 아무 일도 못하면 부모가 그 일을 도와줄 거 아닙니까? 당연한 겁니다. 그래야 가정이 원만한 가정이 되고, 그래야 아이가 자랄 수가 있는 겁니다.

내나 교회도 똑같은 겁니다. 교회는 어린 자와 장성한 자가 항상 같이 있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주일 학생도 있고 장년만도 있고 직분이 있는 사람도 있고 직분이 없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걸 다 둘을 좋아해서 직분이 없는 자가 나중에는 직분이 있도록까지 자라고, 어린 자가 장성한 자로 자라고, 자라서 또 그 장성한 자가 어린 자를 가르치는 이 사람이 되고, 이것이 가정이요. 교회요. 가정 교회도 그렇고  사회 교회도 그렇고. 자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기가 장성한 위치에서는 어린 자를 위해서 기도를 해라. 어린 자를 위해서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해라. 그래야 어린 자가 자란다.

어린 자 입장에서는 항상 신앙이 앞선 사람을 존대를 해라. 존대해서 그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날 위해서 인도할 때 우리가 거기에 따라가는 자가 되고 그를 존대하는 자가 되라. 이것이 될 때 그 교회는 자라게 됩니다. 그 교회는 자꾸 이렇게 정상이 되어지고 자라는 교회가 되고 온전한 사람 만드는 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 기도할 때에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요거는 꼭 우리가 해야 될 교회 안에서의 의무를 가르칩니다. 신앙이 앞선 사람의 의무요. 신앙이 뒤선 사람의 의무를 가르칩니다. 똑같이 신앙이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항상 교회는 보면 어린 자와 신앙이 앞선 자와 함께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함께 있는 것이. 이 함께 있을 때 하나님이 내가 과거에 어려서 신앙이 앞선 자의 도움을 받아서 내가 이렇게 자랐지 않느냐? 이젠 내가 자랐으니 신앙이 어린 자를 위해서 도와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서 다 모든 것을 다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전부 다 수고하고 그럼으로 인하여 그들이 자라서 그 교회가 튼튼한 교회가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자라서 또 장성한 교인이 된단 말이요. 그럼 장성한 교인이 또 밑에는 또 교회를 또 장성하게 만드는 그 일을 또 하는 겁니다.

자 그러니까 내가 장로의 입장에 서 있는 경우도 있고 어린 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위에 내보다 신앙이 나은 사람이면 나는 어린 자요. 내 아래 신앙이 어린 사람 앞에서 나는 장로의 위치가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두 위치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자의 위치도 있고 장로의 위치도 있고. 이 반 사 선생님은 먼저 모반사가 있습니다. 반사의 반사, 이전에 나를 반사로 길렀던 그 반사에게는 어린 자요, 그러나 자기 밑에 있는 학생들 앞에는 장로가 됩니다. 그러니까 항상 우리는 이 두 위치 가운데 있는 것이 우리요. 하늘나라 가면 주님은 우리 위에 계신 분이요. 우리보다 앞선 분이요. 늘 그분의 도움을 받고 그분의 지도를 받고 그분의 은혜를 받고 우리는 그 분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힘써야 되고

또 그 밑에는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면 만물 위에는 우리가 앞선 자요. 그래서 만물을 위해서 우리는 희생하고 수고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자꾸 주려고 애를 쓰고 그런 위치에 살 것이 곧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우리 위에 있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서 우리 아래 있는 만물에게 은혜를 시은하는 이런 위치가 되어 있는 것이 하늘나라요. 이 세상에 교회도 그렇고 이 세상에 가정도 그렇고 또 사회단체도 그렇고 그래서 우리는 항상 위에 있는 자를 존대하는 것이 되어라. 우리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에. 그 사람이 스스로 존대한 위치가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위에 먼저 세워서 내 신앙의 어린 면을 잘 지도하고, 잘 인도하고, 어릴 때는 지도해 주고 인도해 주고 도와줘야 자랄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고.

또 어린 자는 것을 그를 잘 따라야 됩니다. 그걸 거부하고 내가 왜 너를 따르느냐? 내가 왜 네 지도를 받느냐? 어린 자가 신앙이 앞선 자에게 그랬다면 더 이상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강제는 없습니다. 강제로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신앙은. 그러나 어릴 때는 아직도 철없이 모를 때는 강제가 아니라 바로 갈 수 있도록 이렇게 어린 자에 맞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 회초리입니다. 회초리라는 것은 그 근본은 사랑이요. 근본은 사랑이 되어서 회초리가 들어가야 되지 그냥 너가 이렇게 했으니까 이런 벌을 받아야 된다. 정죄성 그런 회초리는 회초리가 아니고 그것은 정죄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런 발전도 없고 거기는 그 회초리 대봐야 반발만 생기고 더 엇질로 더 나아가게 되고, 그러나 그 속의 사랑을 담아서 그렇게 회초리를 댈 때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참 약이 되고 그것이 자기들에게는 피가 되고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징계를 하실 때는 그 징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깨닫도록해서 스스로 회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그러니까 어린 자는 신앙의 앞선 자를 단마음으로 존대하면서 따라갈 수 있도록 되어야 되고, 앞선 자는 어린 자를 위해서 희생하며 수고하며 위하여 기도하며 어른으로서 아이를 대해야 되고, 아이는 어른을 어른으로 대하고 그렇게 하면 아이가 자라고 그렇지 안하면 아이는 자라지 않습니다. 신앙이 안 자란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두 위치해 있다. 장로의 위치해 있고 우리는 어린 자의 위치에 있다. 어린 자의 위치에서는 장로들을 항상 존대하며 따라가도록 했으며 장로 위치에서는 어린 자를 위해서 어떡하든지 희생하며 수고하며 그들을 인도하려고 애쓰며 이렇게 하면서 기도해라. 이 기도라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기도다. 신앙에 앞선 자가 신앙에 뒤선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요것이 기도의 자세요. 또 신앙이 어린 자는 신앙에 앞선 자에게 부탁을 해서 참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라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해야 되지.

나는 내고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나는 내고 너는 내(너)다, 너는 너고 나는 내다 이러면 그 가정은 모양만 가정이지 가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도 앞선 자는 나는 앞서으니까 나는 내 신앙 지키고, 너는 뒤선 자니까 너는 너가 알아서 하고 또 어린 자는 나한테 간섭하지 마라. 내 혼자 내가 알아서하겠다. 그러면 교회가 아니라 말이요. 어린 자와 앞선 자는 이렇게 서로가 돕고 또 도움을 받고 이래가지고 자라는 겁니다. 이렇게 자랍니다.

오늘 여기에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하는 장로라는 요 면을 우리가 생각합시다. 교인 간에 이런 관계가 아닌 그냥 일대 일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신앙이 앞선 자가 아니고 내가 배워야 될 관계가 아니고 그런 자의 관계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줘야 됩니다.

그러나 장로와 어린 자의 관계는 자기가 모두 보다 책임지고 모든 것을 다 희생하면서 다 이렇게 위해서 해줘야 될 이유는 더 큰 의무가 있는 겁니다. 더 큰 의무. 그래서 모든 이 교인과 교인의 관계는 서로서로 위해 주는 것은 가장 당연한 겁니다. 신앙이 어리든 신앙이 앞서든 그것과 상관없이 모든 지체는 한 지체는 다른 지체와 다른 지체를 사랑하고 위해 주는 것이 맞고, 그러나 신앙이 앞선 지체가 있고 뒤선 지체가 있을 때는 요것은 또 책임을 지고 자기가 희생으로 앞선 사람은 해야 되고, 뒤선 사람은 앞선 사람에게 어떡하듣지 존대하면서 따라갈 수 있는 이런 것이 되면 그것이 신앙이 자라는 것이요. 그것이 교회가 자라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겁니다.

자 기도 할 때 우리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장로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어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어린 사람은 내 보다 신앙이  앞선 사람에게 이 기도를 부탁하고 그래가지고 그 교회가 어린 자는 자라가는 교회가 되고 장성한 자는 더욱 더 장성한 자가 됩니다. 이 이후에는 장성한 자는 세상 끝날까지 자라가도 더 자라가야 되는데 더 다 모자랍니다. 그러니까 장성한 자는 더 어린 자를 위해서 (하는) 기도가  나중에는 어린 자를 위해서 생명을 다 바칠 만큼 된다면 고것은 다 한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마지막에는 너희들이 나를 두 팔을 벌리게해서 너희들이 가는 곳에 내가 매여서 안갈수가 없도록 내 마음대로 절대 못한다.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이제는 생명까지도 이제는 다 없어지는 그날이 올 것이다. 고게 장성한 자가 최종 더 장성하는 길입니다. 이 장성한 자가(는) 자꾸 더 장성이 되야 되고, 어린 자는 자꾸 장성한로 자라가야 되고, 이것이 교회의 직분이요 교회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합시다. 어떡하든지 어린 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어린 자는 앞선 자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이런 것이 되어야 온전한 기도의 교회가 되는 겁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번호듣기셜교제목성경본문동영상음성
6913  220922_목새.mp3220922_목새.mp3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을 위해 기도하라 59● 야고보서05:14  동영상   
6912  220921_수야.mp3220921_수야.mp3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하라 59● 야고보서05:14  동영상   
6911  220921_수새.mp3220921_수새.mp3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하라 - (어린 자와 장로의 의무) 59● 야고보서05:14  동영상   
6910  220920_화새.mp3220920_화새.mp3    범사에 감사하라 - 순풍과 풍랑을 기뻐하라 59● 야고보서05:13  동영상   
6909  220919_월새.mp3220919_월새.mp3    고난을 감사하면서 기도하라 59● 야고보서05:13-14  동영상   
6908  220918_주후.mp3220918_주후.mp3    기도해야 할 때 3가지와 기도의 방편 4가지 59● 야고보서05:13-18  동영상   
6907  220918_주전.mp3220918_주전.mp3    바른 고난관을 가져라 - (고난의 장점과 종류) 59● 야고보서05:13-18  동영상   

 
처음 이전 다음       목록 쓰기




http://www.technote.co.kr/tech2002/sendmail/sendmail.c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