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설교읽기설교듣기양의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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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 / 행위와 믿음 / 믿음과 행함  
성경본문:45● 로마서04:04-05
1:106
    221115_화새.mp3 ()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5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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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4절 말씀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일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네

우리가 성경에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아니한 자를 가지고 많은 비유도 하시고, 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는데 일하는 자란 무엇이며 일하지 않는 자는 무엇을 가르치느냐? 요 일하는 자란 말은 율법을 행하는 자를 가르쳐서 일하는 자라 그랬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내가 하나님에게 의로 여김을 받겠다 (하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나를 의로 여김을 받는 데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내가 율법을 행함으로 내 힘으로 행할 때 의로 여김을 받겠다는 거요. 그것이 일하는 자라. 내 힘으로 내가 일을 한다 그 말이요. 또 다른 의로 여김을 받는 방법은 하나님이 대신 율법을 다 행한 것을 내가 믿을 때 하나님에게 의로 여김을 받는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믿을 때. 믿는다는 말은 내 힘으로 내가 율법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대신 율법을 행한 것을 내가 믿는 것을 가르쳐서 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 일을 하신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거기에 보면 비유가 나오는데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내나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비유는 내나 율법을 행하는 자와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율법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이 율법을 행한 것을 내가 믿을 때 그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 자입니다. 여기서도 보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랬단 말이요. 이 말은 율법을 자기 힘으로 지킬려고 하는 자에게는 그 말입니다.

율법을 자기 힘으로 다 지켜서 하나님 앞에 내가 의로움을 내가 여기심을 받겠다. 내가 의를 이루겠다 그 말이요. 자기 힘으로. 그래서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 우리는 어떤 자가 돼야 됩니까? 일하는 자가 돼야 됩니까? 일하지 않는 자가 돼야 됩니까? 즉 율법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의로 여김을 받는 자가 돼야 됩니까?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로움을 받는 자가 돼야 됩니까?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는 자가 돼야 될 거 아닙니까? 믿음으로. 율법을 행함으로 의로움을 받는 자가 돼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을 율법주의라 율법주의자라 보통 그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 대신 이 율법을 다 행한 것을 믿어서 의로 여김을 받는 이것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안하고 그것은 상관하지 아니하고 내 힘으로 율법을 다 이루겠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율법주의자요. 또 일하지 않는 자는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그건 대속주의자라 보통 그렇게 구별를 합니다. 율법주의자와 대속주의자. 자 우리는 율법주의자가 돼야 됩니까? 대속주의자가 됩니까? 대속주의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믿는 자가 돼야 된다 그 말이요.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될라고 다 이렇게 나선 사람이 다 기독자들입니다.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을 이것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 예수님 믿는 자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요. 이것을 그리스도인이라 이걸 기독자라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진작 그렇게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예수님이 우리 위하여 대신 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대신 율법을 다 행했다고 정말로 믿는 사람이 있느냐 그 말입니다. 정말로 믿는 사람이 있느냐? 항상 믿는 사람이 있느냐? 뜨문뜨문 믿는 사람이 있느냐? 정말로 믿는 사람이 있느냐? 그냥 형식으로만 믿는 사람이 있느냐? 자 우리는 이 예수님이 우리 위하여 대신 이 대속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는 사람이 돼야 되는데 그런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자 이 일을 믿으려면 이 세상 과학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은 이 일은 못 믿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다 대형을 하시고, 우리가 행할 의를 대신 다  의를 행하시고, 우리가 행해야 될 선을 예수님이 다 이 선을 다 행하신 것을 다 믿을 때 효력이 온다는 것, 이거는 믿을 수가 없는 일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를 때는 예수님 믿는 사람은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으로 봤습니다.

어떻게 저걸 믿느냐? 참 어리석다. 과학하고는 정반대요. 역사에 없는 일이요. 통계에도 없는 일이요. 세상의 상식적인 이성을 가지고는 택도 없는 소리요. 그런데 그것을 저렇게 생명을 바쳐가면서 믿을 정도로 된다면 저거는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 저렇게 무슨 세뇌가 돼 가지고 저런 것이다. 자기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또 정작 예수님을 참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그 믿는 것을 보면 평안할 때 그때는 쫌 믿는 것 같이 보이고,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없을 때 이럴 때는 믿는 것 같이 보이는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그 믿음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립니다. 그것는 믿음이 아니요. 그것은 믿음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온전한 참 믿는 자 같으면 어려움이 와도 상관없이 믿는 이것이 참 믿음 아닙니까?

자 내가 어떤 사람이 요즘이야 그렇지만 옛날에 이 서울을 올 수 없는 걸어서 와야 될 그런 이전 고대 시대 때는 우리나라 뭐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나 뭐 그 때는 이 서울을 그때 경성이라고 그랬는데 이 서울에 경성에 한 번 올라면 맨날 뭐 보름이나 한 달이나 그렇게 걸어서 와야 됩니다. 경비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래서 잘 못 옵니다. 그래서 이 서울에 온다는 것은 온다는 것은 참 어렵다 그 말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서울에 왔습니다. 서울에 가니까 거기에 남대문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남대문은 참 굉장하더라. 그래 큰 문은 내가 본 적이 없다. 그 큰 문은 그런데 남대문은 문턱이 없더라. 문턱이 없더라. 남대문을 보니까 문턱이 없더라 그랬단 말이요. 그러니까 거기에 가지 않은 사람이 말하기로 뭐라고 했는고 하니 "문턱이 없는 문은 없다. 그런 문은 천하에 어딨느냐?" 자기들이 지금까지 본 경험으로 들은 말로 한 번도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고 그런데 문턱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로 여깁니다. 문턱이 없다는 말을.

아무리 문턱이 없다 해도 역사에 그런 일이 없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것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으니까 이거는 내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다. 그것은 문턱이 없다. 다른 건 다 있는데 문턱은 없더라. 그래서 그렇게 말한 것을 들었단 말이요. 이 사람이 듣고 난 뒤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을 하니까 내가 한번 가봐야 되겠다. 그래서 자기가 시간을 들여서 몇 달 걸려서 갔다 왔습니다. 갔다 오니까 정말 문턱이 없었습니다. 남대문 문턱에 없습니다. 문은 다 문턱이 있는데, 문턱이라는 말은 문지방을 가르칩니다. 문을 건널 때 문 밑에 걸쳐놓은 문지방을 문턱이라 그럽니다.

문턱이 있(없)더라 그 말이요. 그러면 이 사람이 다시 돌아가서 돌아가서 그 사람 말대로 과연 문턱이 없더라. 그 사람 말이 맞더라. 그러면 그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안 믿겠습니까?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사람을 사람을 믿는 사람은 사람의 말을 믿을 것이요. 그러나 대부분 다 저 사람도 저 참 거짓말도 한다. 이렇게 한다 말이요. 그런데 거짓말한다고 이렇게하고 너 한 번 더 그런 소리 하면 너는 이 거짓말을 퍼뜨리면 너는 가만두지 않겠다. 위협을 합니다. 그렇든 말든 자기는 문턱이 없다고 또 외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다가 매를 때립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퍼트리냐고. 자 그러면 그런 어려움이 올 때 그 어려움을 당할 때 당하니까 문턱이 없다는 것이 변경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문턱이 없다는 생각을 변경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본 자는 변경을 못합니다. 본 자는. 보지 못하는 사람은 당장 매 맞는 것이 아프니까 거기에 그냥 못 이겨서 그냥  문턱이 있다. 문턱이 있다. 자꾸 이렇게 해서 변동을 해 버립니다.

그러나 정말 본 사람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가 봤다. 나는 들어서 안 것이 아니고 봤기 때문에 이거는 아무리 너가 너희들이 때린다 해도 내 마음은 변동을 못 한다. 네 입술은 겁이 나서 이렇게 할 수 있어도 마음은 변동을 못 한다.

자 믿음이라는 것은 이런 걸 가르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사실을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되었을 때 그것이 믿음이요. 즉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이것을 누가 믿겠습니까?  하나님 존재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다. 그 분이 우리 위하여 대신 죄값을 받으셨다. 우리 위하여 대신 의를 행하셨다. 우리 대신 선을 행하셨다는 이거는 믿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요. 모르는 자에게는. 그래서 다 안 믿지만은 그러나 한 번 이것을 성령의 빛을 받아서 이것을 한번 맛 본 자에게는 그것을 변경을 하지 못합니다. 내가 아무리 문턱이 없다고 다 사람들이 말하니까 문턱이 있다고 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 나도 문턱이 있다 이렇게 자기가 그 사람들을 따라갈 수가 없단 말이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봤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은혜와 이 대속의 이 은혜를 한 번 빛을 받은 후에 이것을 본 사람은 예수님은 우리 왜 대속하지 안했다고 이렇게 말을 못 하는 겁니다. 못한다 그 말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헤라.

그래서 여기에 일을 아니하는 자라는 것은 율법으로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자입니다. 여기에 일를 안 하는 자는 율법으로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대신 행해서 이 말은 내가 행하지 안한다 그 말이요. 일하지 않는다 말은 내가 율법을 행하지 아니한다는 뜻이요. 내가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대신 행해서 그것을 내가 믿을 때 나를 우리를 의로 여기심을 받는 이 일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가져야 됩니다. 이 믿음이란는 것 바로 깨달아서, 정말 우리가 이 율법을 내가 내 힘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이 다 행하셨다는 이것을 믿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은 믿지 못하는 고 중에서도 믿었고 바랄 수 없는 중에서도 바랬다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평범한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그런 속에서 믿은 것이 아니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그 가운데서 믿었기 때문에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져야 된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질 때 그 사람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할 수 있고, 형편 따라 사정 따라 믿음이 변경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었다 그랬습니다.  정말 믿는 사람은 환경에 따라서 믿음이 변경이 안 됩니다.

정말 안 믿으니까 변경이 되지요. 남대문 문턱이 없다는 것을 한번 본 사람은 아무리 누가 많은 사람이 열 사람이 말하고 백 사람이 말하고 천사람이 말한다 해도, 문턱이 있을 것이다. 문턱이 있지 없을 리가 있나 해도 만약에 모든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그런다 해도 나는 봤기 때문에 너희들이 아무 그래도 내 믿음은 변경할 수가 없다.  내 믿음은 변경할 수가 없다. 자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요. 아브라함은 그 당시 아브라함 외에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네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그래하면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큰 민족의 복을 주고 이 땅도 내 복으로 주고 너가 이걸 다스릴 수 있는 이 복을 주겠다. 너로 모든 복의 근원이 되게 주겠다. 이 약속을 했을 때 누가 이 약속을 믿었습니까? 누가 믿었습니까?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간다는 말을 누가 믿느냐 말이요.

믿으면 우리의 죄가 다 사함 받고, 우리는 모든 지옥 형벌에서 면제를 받고 의로 인하여 의를 믿음으로 우리는 천국 가고 우리는 선을 믿음으로 천국 가서 하나님의 아들되어서 영원히 사람을 많은 만물을 다스리는 이런 자가 된다는 이것을 누가 믿는냐? 그 말이요. 아브라함 때 그 아브라함이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도 믿었는데 이것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100세 때 아들 낳는다. 90세에 아들 낳는다. 자기의 몸이 정기가 죽었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그것을 살려서라도 이거는 이삭을 낳게 해주겠다 그랬습니다. 그것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지금까지 다 과학이 발달하니까 전부 과학의 종이 되었지. 하나님의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전부 과학의 종이지, 합리의 종이지, 전부 합리에 맞아야 되고 과학에 맞아야 되고 역사에 맞아야 되고 통계에 맞아야 되고 자기 이성에 상식에 맞아야 되고 그래야 믿지. 이런 과학하고 정반대가 되고, 통계와 역사와 상식과 정 반대가 되는 이런 일을 어떻게 믿느냐? 이게 믿음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려면 이런 믿음을 가져야 아브라함의 자손이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천지를 다 지어서 있고 하나님이 홀로 움직이시고 마지막에 심판하신다 하는 이 더 큰 이것을 우리가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을 믿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창조와 주권과 이 심판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되었서도 십자가 죽고 부활하신 이것을 안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뭐부터 믿어야 됩니까? 하나님의 크신 능력 이거부터 믿고, 그 다음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이 대속의 이 사랑을 비로소 믿을 수가 있는 겁니다. 창세기를 믿지 않은 사람이 예수님의 신약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위하여 대신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없는 가운데 천지를 다 지으시고 그 지은 분이 모든 천하를 다 홀로 주권하시고 그 분이 마지막 다 심판하신다는 이것을 믿는 사람이 이제는 예수님 하나님이 사람되 오신 것을 믿을 수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왔고 하늘에서 사람되어 오셔서 우리에 가까이 왔고, 우리 위하여 십자가 죽으심으로 더 가까이 왔고, 부활하심으로 더 가까이 왔고, 성령을 보내심므로 이제 우리 속에 와 계십니다. 그렇게 멀게 계신 하나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신다. 가까이 와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겁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대신하는 대속을 부인하는 사람은 율법을 내 힘으로 내가 믿겠다(행하겠다). 율법으로 틀림없이 내가 율법대로 살겠다. 예수님의 대속은 부인하고 예수없이 율법대로 살겠다. 그게 유대교요.

유대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믿는 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는 그 대속의 공로는 믿지 않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시는 하나님이시요. 또 예수님이(을) 죽은 자가 살리는 것은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참 믿음인데. 그 유대교는 아직도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예수님은 안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 율법을 통해서 내가 구원을 얻으려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그것이 일하는 자라. 또 예수님 믿는 사람은 일하지 않는 자라. 율법을 행하지 않는 자라. 예수님이 대신 율법을 행한 것을 믿는 자라 그 말입니다.

자 여기까지 여기까지가 바로 이전에 타락한 천주교가 있고 여기 개혁한 이 개혁교가 있습니다. 이 개혁교가 내나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얻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겁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지.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바탕을 둬야 그 신앙이 바로 됩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가 거기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되는데 여기서 다 정체가 된 것입니다. 그 뒤에 칼빈주의는 그 뒤에 정체가 된 겁니다. 그 때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되는데, 어떤 걸음으로 더 나가야 되느냐? 마음으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하는 그것이 맞지마는,  

그 믿음이 행하는 데까지의 믿음이 돼야 된다. 믿음이 행하기까지의 믿음이 되야 되는데, 마음으로 믿으면 된다고 요렇게 해서 거기서 딱 나아가는 것이 중단이 된 겁니다. 이것이 칼빈주의요. 자 그래서 칼빈주의는 우리가 율법을 행하므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하는 여기까지는 참 바로 됐고 참 잘 됐습니다. 그 뒤에 이제는 믿음으로 구원 얻을 때 마음의 믿음으로 구원 얻을 때, 마음으로 믿음 뿐만 아니라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 요 때 행함은 율법을 행함이 아니고 뭐라 했습니까? 요 때는 율법을 행함이 아니고 무엇을 행하는 겁니까? 믿음으로 행하는 겁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 그래서 요 때 행함을 가르쳐서 믿음을 온전케 하는 행함이라 그랬습니다. 행함은 믿음을 온전케 하는 행함이라. 그래서 율법을 행함과 믿음을 온전케 하는 행함하고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겁니다.

율법을 행하는 것은 자기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의을 이루겠다는 뜻이요. 그러나 믿음의 행함은 이 믿음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요렇게 우리가 구별해서 지금은 믿음을 온전케 하는 요 행함을 힘써야 될 것이요. 행해야 구원 얻는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 말은 믿음의 행위를 해야 구원 얻는다 그 말입니다. 믿어야 구원 얻는다 말이나 믿음의 행위를 해야 구원 얻는다 말은 내나 같은 말이요. 그런데 사람들이 야 행함을 강조하지 마라. 그러면 율법주의자가 된다.

이래 가지고 우리는 죽도록 충성하는 이 행함을 자꾸 거기다 율법의 행함으로 거기에다가 갖다 붙여가지고 행하는 자가 되지 말아라. 일하는 자가 되지 말고 일하지 않는 자가 돼야 된다. 거기에다가 그걸 갖다 붙여가지고 전부 다 마음으로 믿으면 되지 무슨 네가 행동을 한단 말이냐? 그 행한 것은 다 율법주의자가 된다. 이래 거기에다 갖다 붙이는 것이 마귀 역사입니다. 그 지금은 우리에게 기본 구원과 건설구원을 통해서 건설구원은 행위 구원이라고도 합니다. 요 때 행위구원은 믿음의 행함을 가르칩니다. 율법의 행함이 아니라. 믿음의 행함이요. 주님의 대속을 믿은 그 마음을  이제는 몸으로 믿는 것이요. 자기의 소유로 믿는 것이요. 자기의 생명을 드려서 믿는 겁니다.

자 그래서 행함은 믿음을 온전히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먹을 이 떡은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과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은 믿음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다 됐다. 믿음으로 됐다 말은 믿음으로 50점 됐다 그 말입니다. 믿음으로 됐다 말은 그 믿음이 온전하게 돼야 되는데 그것이 행함이요.

예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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