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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함없이 받은 기본구원은 또 같으나 - (그것을 은혜로 여기는 믿음의 양은 각각 다름)  
성경본문:40● 마태복음20:08-10
1:11
    221123_수새.mp3 ()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1)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1)데나리온씩 받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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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장 8절 말씀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 지라. 네.

포도원 주인이 아침 이른 새벽 6시부터 품군을 불러서 일을 시켰습니다. 저녁 6시까지 12시간 일하는 시간을 두고 그렇게 일을 다 시키고 난 뒤에 "저물매" 이제 일이 다 끝나는 저녁 6시가 된 후에 그 말입니다. 그때 포도원 주인이 이제는 삯을 품군들에게 다 주는 시간입니다. 저 하나님의 심판 때를 가르칩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다 갚아주는 행한 대로 갚는 그 일을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요. 이 땅에서 너희는 어떻게 행했느냐? 하는 고 행함에 따라서 이 땅에 사는 동안 너는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심판하는 이것이 곧 "저물매" 그랬습니다. 저물매. 주님 오시는 그 날이요. 주님 만나는 그 날이요. 이 세상이 다 끝나는 그 날이요. 우리가 이 땅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를 그것을 가지고 심사를 해서 거기에 따라서 복을 줄 자는 복을 주고 화를 줄 자는 화을 주고 많이 줄 자는 많이 주고 적게 줄 자는 적게 주는 이 심판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니까, 이 심판에서 5종류의 사람들에게 그 품꾼들에게 똑같이 주었다. 한 데나리온씩을 똑같이 주었습니다. 구원이라 것은 이렇게 똑같은 것을 주는 것이 구원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에 상관없이? 그 사람이 일을 많이 했는지 작게 했는지 상관을 하지 아니하고, 일을 안 해도 일을 안 했는지 했는지 많이 했는지 적게 했는지, 이거 상관없이 똑같이 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므나 비유에서도 내나 어느 사람이든 한 므나씩 모두 믿는 사람에게 한 므나씩을 다 주었습니다. 내나 이것이 똑같은 구원입니다. 누구나 다 똑같이 받는 구원이요. 자 이 성구를 우리가 알기 전에는 이렇게 우리를 깨닫기 전에 미리 구원관에 대해서 먼저 앞선 선지자가 구원은 두 가지라. 하나는 누구나 똑같이 받는 기본 구원이 있고, 또 하나는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그런 건설구원이 있다 하는 것을 미리 우리가 아니까 이런 말씀을 똑같이 받는 기본구원을 지금 말하구나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받은 이 깨달음의 지식이 우리 속에 있으니까 이것을 우리가 바로 이렇게 깨달아 나갈 수가 있지. 그 뒤에 사람마다 받는 구원이 각각 다르게 될 때, 그러면  이건 또 무슨 구원이냐? 이건 또 뭐냐? 이래 가지고 구원을 한 가지로만 여기는 사람은 거기에서 또 복잡하게 돼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원이 있고 천국 가는 구원이 있고 또 하나는 성화구원이 있구나 이렇게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그것도 내나 차이가 나는 구원은 맞기는 맞아도 그것이 어떻게 기본구원과 차이가 없는 이 구원과 어떻게 구별이 되느냐 하는 그 구별하는 것을 바로 해 놓지 않으니까 그 구별을 못 하는 겁니다. 구별이 안 되니까 행하는 것에 따라서 어떤 때는 행해야 된다. 어떤 때는 행함이 없어야 된다. 이렇게 행함에 이 문제가 복잡하게 이 모순이 되버린다 그 말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을 둘로 나누어서 우리에게 밝히 미리 다 가르쳐 주셨고, 이것을 지식을 미리 알고 있으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 사람은 똑같이 받는 이 기본구원이 있는 동시에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그런 건설구원도 있다는 것을, 그 방편도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 구원은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을 많이 했든 작게 했든, 일을 한다는 말은 율법을 행한다는 뜻인데, 율법을 자기가 다 지켰든 덜 지켰든 못 지켰든 거기에 따라서 한 데나리온 즉 기본구원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일을 다 하지 않은 사람이 4종류가 있지 않습니까? 일을 한 사람 다 한 사람은 한 종류입니다. 다 똑같이 받았다 말이요. 일 하나 안 하나 행함은 상관이 없는 겁니다. 행함과 상관없이 주는 구원이 기본 구원이라. 이렇게 우리가 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일 안 하는데도 주는 겁니다. 행치 않는데도 준다 그 말이요. 율법을 다 지키지 안했는데도 준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기본 구원이요. 율법을 행한다 말은 내가 얼마나 믿고 얼마나 내가 율법을 행했느냐? 하나도 율법을 행치 안해도 이 기본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요. 거기 열한 시간 일하지 아니하고 겨우 한 시간 일한 사람도 똑같이 기본구원을 받았습니다. 일 데나리온을 받았다 말이요. 12시간 종일 일한 사람도 일 다 했다고 하는 이 사람도 기본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한 시간도 일하지 않는 그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람도 기본구원을 받습니다. 자 기본구원은 다 똑같이 주는 구원인데, 차이가 나는 것은 뭐가 차이가 나느냐? 분명히 여기 차이가 납니다.

여기에 5종류의 사람들이 분명히 차이가 납니다. 무엇이 차이 납니까? 일을 많이 했느냐? 일을 적게 했느냐? 요 차이는 있다 그 말이요. 결과는 똑같이 한 데나리온밖에 받지 못했지만도, 기본구원은 다 같이 받았지만도, 같게 다 받았지만도, 그러나 그들의 일한 것은 차이가 있다. 차이가 있어도 기본구원 받는 데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안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한 차이가 있는 이것은 그 뒤에 그 뒤에 이루는 또 건설구원이란 것이 있습니다. 영생구원이라고도 하고, 여기는 요것이 영향이 미칩니다. 일 작게 한 사람과 일 많이 한 사람의 차이가 일 데나리온 받는 데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은 차이가 없지마은 그러나 뒤에 자기가 건설 구원을 받게 되는 그 일에는 분명히 심히 (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어떤 차이냐? 일을 많이 한 사람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은 이 기본구원 한 데나리온 받은 것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마땅히 받을 걸 받는다고 빚으로 여깁니다. 내가 마땅히 받는 것, 내가 일했기 때문에 받는 건데 (이렇게 합니다). 그 사람은 은혜에 대한 것이 없습니다.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은혜에 대한 믿음이 없다 말입니다. 은혜로 여기지 않는다 말은 은혜에 대한 믿음이 없다 그 말입니다. 여긴다 말은 믿는다 말 아닙니까?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은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그러나 3시간 일하지 않은 사람은 3시간 일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한 데나리온을 다 주었으니까 3시간만큼의 은혜에 대한 은혜로 여깁니다. 은혜에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3시간만큼 은혜의 믿음을 가졌다 말이요. 그 다음에 6시에 6시에, 그 다음에 9시에, 십일 시에, 십일 시에 나간 사람은 일하러 들어간 사람은 11 시간 동안 일을 안 했는 겁니다. 그런데도 받았으니까 일 한 시간 은혜를 받은 사람이요. 11 시간을 일 안 했는데도 그것을 은혜로 여깁니다. 그것을. 은혜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그 말이요.

그러면 일 끝나고 일 한 시간 동안 한 사람은 즉 12시에 그때 일하러 들어 갈라니까 딱 끝이 났습니다. 너도 네 삯을 주라. 한 데나리온을 준다면 그 사람은 제일 많은 12시간을 은혜로 여깁니다. 전부를 다 은혜로 여깁니다. 전적 은혜로 여깁니다. 이사람은 전적 은혜로 여깁다 말이요. 여긴단 말은 믿는단 뜻이요. 전적 은혜로 여깁니다. 요 차이는 심히 크지 않습니까? 한 데나리온 받는 거는 똑같다 그랬고, 그것을 은혜로 여기는 것은 심히 차이가 크다 그랬습니다. 사람은 율법을 다 행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 자기가 생각하기로 그 말이요. "일을 한다" 그 말은 자기가 생각하기로 나는 이만큼 일을 했다. 율법을 행했다라고 자기 스스로 그렇게 믿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 그만큼 믿는 만큼 일했다 하고 믿는 것만큼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나는 이만큼 나는 실제로 나는 율법을 행치 못했다 하고 여기는 것은 그만큼 은혜로 여긴다 그 말입니다. 은혜로 여기는 그 차이는 심히 크다. 요것을 지금 가르치는 겁니다. 자 은혜로 여기는 고 믿음이 똑같이 기본구원을 받아도 은혜에 대한 믿음이 각각 다르다.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한 은혜를 하나도 여기지 아니하고, 어떤 사람이면 3만큼 은혜 여기고, 어떤 사람은 6만큼, 어떤 사람은 9만큼, 어떤 사람은 11만큼, 어떤 사람은 전부를 12는 전부 아닙니까? 전부를 다 은혜로 여깁니다.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다. 전부 주님이 다 하셨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으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다 죄를 범했지 우리가 죄 없는 자가 없는데 죄 사함 받은 것도 없고 또 의을 행한 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는데 내가 이 만큼 의를 행했다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잘못 깨달아서 그런 것이지. 잘못 알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대속은 내가 행치 못한 거, 내 죄를 주님이 전적으로 내 많은 더 많은 죄들을 그 많은 내가 행치 못한 불의를 예수님이 다 대신하셨다. 요것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람 속에 은혜에 대한 믿음이 큰 사람이요. 은혜에 대한 믿음이 크면 어떻게 됩니까? 그 분을 찬송하게 됩니다. 그 분리 내게 은혜를 많이 베풀어 줬다고 여기는 사람은 믿는 사람은 그 분에게 감사하며 그 분을 찬송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찬송의 양이 많아지고 그 믿음의 양만큼 그 사람이 감사 양이 많아집니다. 그 분은 그러면 그 다음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다음은 그분을 감사하는 만큼 그분을 사랑하게 됩니다. 은혜를 베푼 그 분을 사랑하게 된다 말이요. 그분이 날 이렇게 해 주었다는 것을 너무 기쁘고 너무 감사가 돼서 감사가 나올 정도 되니까 그분을 위할 수밖에 없고 그분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분의 소원이 뭡니까? 내 계명을 지키라.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해라. 복음운동해라. 그 사람은 복음 운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복음 운동 합니다. 복음 운동할 때에 많이 복음 운동하는 사람이 있고 적게 복음 운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많이 은혜로 여기는 사람은, 이 기본 구원 이 사활의 대속을 많은 은혜로 여기는 사람은, 많은 복음 운동을 할 것이요. 적게  은혜로 여긴 사람은 적게 복음 운동을 할 것입니다. 이걸 가르쳐서 므나 비유에서 많은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이 있고,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이 있고. 남긴 므나는 복음 운동의 양을 가르칩니다. 남긴 므나는.

복음 운동의 양이 많은 사람이 있고 적은 사람이 있다 그 말입니다. 그게 므나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이고, 오늘 여기에 이 비유에서는 기본구원을 받을 때 그 받을 때 내가 내가 한 것이 곧 주님의 은혜가 전부다 하고 여길 때 그렇게 여기는 믿음의 양을 가르칩니다. 믿음의 양을 가르칩니다. 은혜로 여기는 곧 믿음의 양, 그것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은 므나 비유에서 복음 운동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요. 복음 운동을 많이 한다는 말은 므나 비유에서 므나를 많이 남겼단 말은 복음 운동을 많이 한다. 적게 한다. 요거는 무엇을 가지고 판단합니까? 복음 운동을 하기는 하는데 모든 현실에서 다 복음 운동하는 사람이 있고, 일부 현실에서만 복음 운동하는 사람이 있고, 대부분 현실에서 복음 운동하는 사람이 있고, 즉 환란의 어려움이 있을 때도 복음 운동하는 사람이 있고, 환란이 있으면 복음 운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좁은 길로 끝까지 좁은 길로 많은 사람이 가지 않는 그 길로 가면서 복음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 길은 힘드니까 그냥 넓은 길로 가면서 복음 운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요. 요거 복음 운동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이걸 가르쳐서 열 므나를 남긴 사람,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이라.

거기에 따라서 열 고을을 주고 다섯 고을을 준다. 이게 건설구원입니다. 이때 받는 이 구원은 심히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이 차이가 나는 요것을 우리에게 또 영생의 구원 이것이 곧 우리에게 행함에 따라서 주는 구원입니다. 요거는 믿음의 행함을 가르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행함이 각각 다른데 고 믿음의 행함에 따라서 하나님이 그에게 고을을 따로 준다 말이요. 그  건설구원은 우리의 심신이 천국 가는 구원이요. 우리 영이 아니고 영은 기본구원이고. 가서 그 영광과 존귀와 부요와 모든 이런 것들이 다 결정되는 것이 심신의 구원이요. 그 나라의 영광의 차이 부요의 차이는 심신이 구원얻는 거기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성화 구원은 심신의 구원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것 알기는 너무 힘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깨달음을 먼저 깨달은 분들이 이걸 다 알게해서 우리가 압니다. 아는 것을 가지고 그 위에 아는 거는 좀 수월하다 그 말이요. 내가 생판 아무것도 모르는 들판에서 이렇게 알아나갈려면 그 알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참 어려운지.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먼저 깨달은 그 위에 위에 앞선 선지자들이 그 위에 하나씩 하나씩 이렇게 보로크을 쌓아 올리듯이 벽돌 쌓아 올리듯이 하나하나 쌓아 올립니다. 장기판 쌓아 올리듯이 하나하나 쌓아 올려서, 우리가 깨닫는 것이 내가 전부를 다 깨닫지를 못합니다. 이 칼빈의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요거 하나 깨닫는데는 많은 오랜 세월이 걸렸고 그 하나로 율법의 행함이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이것을 단번에 다 무너뜨려 버렸고 오른 바른 길을 세운 겁니다.

그러나 거기서 믿음의 행함을 또 가르치는 또 많은 세월이 또 흐릅니다. 그 지금은 우리는 율법의 행함과 믿음의 행함을 구별해서 율법의 행함은 우리가 하나도 없어도 우리는 다 구원을 얻습니다. 주님의 대속의 은혜로. 그러나 믿음의 행함은 열 므나를 남겨라 다섯 므나를 남겨라. 죽도록 충성해라. 이거는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만 되는 이 건설 구원을 또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복잡한 것이 없이 딱 모순되지 아니하고 이렇게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흑암이 너무 깊어서 점점 말세에는 이 모든 마귀 역사는 더 강하고 더 깊어서 이런 깨달음이 그때 그때 하나님이 주니까 그것을 감당해내며 그 말세를 다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하십니다.

또 오늘 여기에 한 데나리온을 똑같이 받은 것은 행함과 상관없이 받는데, 행함과 상관없이 받는다. 다 받는다. 요걸 가르칩니다. 이 택한 자는 이 기본구원은 누구나 다 받습니다. 그 사람의 행위와는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다 행한 사람이나 행하지 않는 사람이나 이 기본구원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야 그래도 믿어야 되지 않느냐? 믿음이 있어야 구원 얻는다 하지 않느냐? 여기에다가(기본구원에다가) 건설구원을 갖다 붙여버리면 이것이 안 된다 그 말이요. 이 해석이 안 되는 겁니다. 건설구원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만 됩니다. 믿음은 건설구원을 받는 노력이요.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데나리오는 믿음이나 행함이나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이 필요하다면 우리 기본구원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건설 구원에 대한 믿음은 그 믿음은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 기본구원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으로 건설구원을 받는 겁니다.

기본구원을 받은 것을 은혜로 여기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은혜로 여기는 요 믿음을 가르칩니다. 요 믿음이 요만큼 주먹만큼 있으면 그것 가지고 컨설구원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고, 믿음이 자기 몸채만큼 크면 그것 가지고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고, 그 자기 믿음이 기본구원에 대한 믿음이 집채만큼 크면  (집채만큼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 믿음의 차이는 어디서 나오느냐? 기본구원을 주신 이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전부 다 이 분의 공로로 되었다는 이 깨달음과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데는 받는 데는 맞지마는 그러나 내 행위도 들어갔다고 여기는 이런 것이 들어가서 사람마다 고 차이가 납니다. 깨달음의 차이가 나고 믿음의 차이가 난다 그 말이요.

자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됩니까? 우리는 여기게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풀로 일한 사람이 구원 얻는다가 아니라 하나도 일을 안 한 사람도 얻는다. 그러면 이 사람이 일한 것 때문에 얻는 것이 아니라. 일한 것 때문에 얻는 것이 아니라 말이요. 일 안 해도 얻는 것 보니까, 일한 거와 상관없이 얻는 것이 그것이 한 데나리온이요. 자 한 므나씩 줄 때도 조건 없이 다 줬습니다.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주고 (그렇게 하지 안했습니다). 그 사람의 믿음을 보고 한 므나씩 준 것이 아니고 똑같이 다 줬습니다. 믿음이 크든 없던 똑같이 한 므나씩을 다 주고 난 뒤에 그것가지고 장사하는 데는 차이가 심히 컸단 말이요. 장사를 해서 많이 남긴 사람과 적게 나 남긴 사람 이 차이는 많이 차이가 심히 커도 똑같이 므나 줄 때는 똑같은데, 누가 그걸 밑천 삼아서 장사를 누가 얼마나 잘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그 남긴 므나는 심히 차이가 큽니다. 요 남긴 므나가 곧 건설구원이요.

오늘 여기에서 한 데나리온을 우리 행함이 없이 기본구원을 다 받는다. 하나님이 택한 자는 그 사람이 믿음이 있든 없든 행함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하나씩 그냥 일방적으로 다 주십니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때 벌써 중생이 된 겁니다. 중생은 자기가 믿어서 중생이 된 것이 아니요. 그 이 중생을 아 사람이 그저 믿어야 되지 않느냐? 믿을 때 믿음이 와서 중생이 된다 이렇게 한다면, 그 믿음이 행함이 중생의 조건이 돼버린단 말이요. 그러면 믿음이 없는 사람은 충성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하기로 반드시 택한 사람은 하나님이 믿음을 주신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중생을 한다 합니다. 중생이 돼도 그때 믿는 생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참 후에 하나님이 비로소 부르심을 받을 때 부를 때 그제서야 이제 하나님을 믿는 생활이 시작됩니다.

중생은 믿어서 중생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님이 대속으로 진리와 성령으로 일방적으로 줘서 그래서 영이 살아나는 것이지. 다 죽었는데 영도 죽었고 심신도 다 죽었는데 그것이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말이요. 그러나 영을 살려놓고 그 다음에 영을 통해서 이제는 비로소 영이 믿음으로 인하여 그 다음에 뭐 심신도 믿는 이 일이 그 뒤에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한 므나를 받은 것이나 한 데나리온을 받으것이나 똑같이 다 받았다. 여기에 한 데나리오은 그 똑같이 받았지만 사람들의 은혜의 차이, 은혜에 대한 믿음의 차이는 심히 크다 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믿으야 됩니까? 하나도 행치 못했는데도 주님이 다 행해서 내게 기본구원 주셨다. 이렇게 믿을 때 그 사람 속에 하나님에 대한 은혜가 충만합니다. 은혜에 대한 믿음이 충만합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됩니다. 감사가 충만합니다. 오늘 찬송처럼 찬송이 충만하다 그 말이요. 그 분이 그런 사람들이 주를 사랑하는 자가 되고, 그 사람이 복음 운동을 하게 됩니다.

예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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