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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에서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  
성경본문:47● 고린도후서01:04
1:17
    230125_수새.mp3 ()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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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4절 말씀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네

성부 성자 성령의 요 하나님을 3위일체 하나님이라 그럽니다. 세 가지 일을 하시는 하나님. 에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 문제와 의 문제와 화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일을 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출발로 해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날 수가 있고 이제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의 크심을 믿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이 사람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가 믿고 이렇게 행하면 되는데,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아버지의 이 사랑을 누가 믿느냐? 누가 믿고 행하느냐? 하는 이 문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 없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행함이 없는 우리에게 행치 못하는 우리에게 행할 수 있도록까지 성령의 감동감화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십니다. 위로한단 말은 믿음 없는 자가 탄식 중에 있을 때 그 믿음을 주어서 그 힘이 나고 기쁨이 나고 평안이 나고 담대해지도록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을 위로라 그럽니다. 위로.

낙망중 있는 자를 소망하는 자로, 원망 중에 있는 자를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를 시킨다. 그것을 위로한다 그럽니다. 이 성령의 역사는 첫째, 다른 역사도 많이 있지마는 하나님이 우리의 지식을 변화시키는 요 위로가 있고,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모든 이런 감정과 이런 것들 다 변화를 시켜서 기쁜 가운데 소망 가운데 참 이런 사람이 되도록 변화시키는 이 위로가 있다. 이 감동 감화의 은혜가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환난 중에서도 끝까지 믿을 수가 있고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행할 수가 있도록 하십니다. 그 환란 중에서 제일 우리가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속에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돼야 되는데, 환난이 오면 그냥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다 없어져 버리고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것을 다 버려버리고 이래 가지고 다 실패가 되나,

그러나 성령의 위로하심이 있기 때문에 그 위로를 받으면 능히 능히 그 환난을 이길 수 있도록 하고 그 환난 중에서도 끝까지 믿고 아버지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자로 이렇게 역사해주십니다. 이걸 가르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니라. 성령의 감동 감화를 시켜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서 이렇게 낙만 가운데 소망으로, 믿음 없는 자가 의심하는 자가 믿음으로, 슬픔 가운데서 기쁨으로, 두려움 가운데서 평안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되니까 이기지 못할 환란이 어딨느냐 그 말이요.

능히 그렇게 위로해 주신다. 능히 환난을 이길 만큼 감당할 만큼 해 주시니까 우리가 낙망 중에 있을 때는 어떤 내가 그렇고 다른 사람이 그래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면 그 환난보다 더 큰 위로가 더 크기 때문에 능히 환란을 이기며 감당을 해냅니다. 그래서 여기에 말씀하시기로 4절 마지막에 보면,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능히 능히란 말은 충만히 그 말입니다. 위로를 그냥 조금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능히, 어느 정도 능히 위로하십니까? 환난을 이길 만큼. 환난이 너무 커서 이 환난 앞에는 내가 낙망할 수밖에 없다. 이 환란이 너무 크니까 이 환난을 도무지 이길 수가 없다 하는데 능히란 말은 그것을 능히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환난을 능히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위도해 주십니다.

자 위로가 더 크면 환난보다 위로가 크면 그 환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한테는 아무런 불안이나 두려움이 나 염려나 고통이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위로가 적으면 그 환난이 더 압도를 해 버리면 그 사람 속에 근심이 생기고 두려움도 생기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위로가 있느냐 없느냐 위로를 받느냐 못 받느냐 그 위로를 하나님의 위로는 환난을 다 이길 만한 그런 능히 이길 만한 그는 위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성령의 은혜를 받으려면 너는 산으로 도망가라. 기도해라. 부르짖으라. 그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천하의 어떤 환난이 산같이 자기 위에 덮치고 바다 물결같이 자기한테 이렇게 밀려와도 아무런 생관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위로가 더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더 커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크게 의지하고 더 믿게 되면 그 환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여겨집니다. 손에 꽉 쥐어진다 말이요. 한 즈먹 밖에 안 된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위로가 더 크고" 이 말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 커지면 그 환난 그것은 쪼그만한 자기한테는 뭐 어떤 이런 한 주먹밖에 되지 않고 또 두려움은 두려움이 아니고 더 큰 두려움의 하나님을 믿게 되니까. 두려움은 두렵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누가 일제강점기 시대 그때 신사 참배할 때 여러 가지 환난이 신사참배라는 환난이 왔을 때 감옥에도 갇혀가고 가면은 뚜드려맞고 거기에서 고문도 당하고 거기서 죽기도 하고 뭐 얼마나 두려겠습니까? 지금은 뭐 그 당시를 우리가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 당시로는 그래서 다 죽기도 하고 다 합니다. 그래서 두려워서 일단 그들에게 잡히지 안해도 두려움 속에 벌써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러면 벌써 폐전이 됐다 그 말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두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에게 자꾸 간구하고 합니다. 하나님이여 이 두려움에서 내가 이기지 못합니다.

탄식하면서 자기 믿음 없음을 탄식하면서 기도하니까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어서 꿈에 보니까, 호랑이가 있는데, 호랑이가 얼마나 무섭게 으르렁거리는데, 그런데 자세히 보니 호랑이가 쫌 이상하다 그 말이요. 뭔가 호랑이가 뭐 펄럭펄럭하니 자세히 보니까, 종이로 만든 호랑이라. 종이에다 호랑이 그림을 그려가지고 그 만든 호랑이가 펄럭펄럭의 움직이는 거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요. 보니까. 호랑이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종이 쪼가리라. 그래가 잠이 턱 깼다 말이요. 그래 가지고 이건 다 종이 호랑이구나. 이 두려움과 이 큰 이 환란의 이런 것은 다 그건 하나님은 실상의 하나님이요. 저들은 다 종이 호랑이지. 가짜 두려움이라. 아무런 힘이 없는 그런 호랑이와 같은 종이 호랑이 같은 그런 것이다 하니까, 거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저들은 아무것도 아니라 것을 깨달아지고 믿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니까, 그래서 담대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또 증거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두려움이 오거나 또 슬픔이 오거나 여러 가지 낙망이 오거나 원망이 오거나 이럴 때에 그런 마음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지 못해서 다 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믿음에서 견고치 못하는 거기에서 다 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말로 믿는 사람은 정말로 깨달아 알고 믿는 사람은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능히 그런 것을 다 이기며 그런 것에게 피동이 되지 않을 만큼 되는데, 전부 다 믿음 문제요. 우리가 믿음이 없으니까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를 지낼 때 대적을 만나면 낙심하고 또 거기서 온갖 형편을 보고 원망하고 그랬지 않습니까? 다 믿음이 없어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순종을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순종하라 해도 순종을 못한다 그 말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지막에 그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젠 들어가서 저들을 점령해라 하니까 믿음이 없으니까 두려워서 벌벌 떨면서 저들은 너무 크고 우린 너무 작습니다.

저들은 거인이고 우리는 메뚜기입니다. 안 됩니다. 다 믿음이 없어서 불순종을 하게 됩니다. 그건 필연적으로. 마음 속에 믿음이 없으니까 겉으로 나타나는 불순종이 나타났다 그 말입니다. 이러니까 참으로 믿고 행하는 요 믿음으로 충만케만 된다면 그 사람은 환난 중에서도 환란을 만나면 다 감당을 해버립니다. 그 환난을 다 이깁니다. 자 환난을 이길 만큼 위로를 받고, 환난을 감당을 할 만큼, 어떤 환난도 내가 감당을 해 버립니다. 능히 이길 만큼 능히 감당할 만한 그런 위로를 받으면 됩니다. 위로만 받으면 그 사람은 된다 그 말이요. 위로를 받으면. 자 위로는 어떻게 받습니까?

하나님에 그냥 간절히 기도하면 진실되게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위로를 해 주십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져서 점점 빠져 죽어가고 있을 때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하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손을 내밀 때 주님이 손을 잡아주었습니까? 안잡아줬습니까?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부모가 자식하고 물놀이 갔는데 어찌하다가 아이가 실수로 물에 빠졌습니다. 물에 빠져서 아버지 날 구출해 주옵소서 울고 난리입니다. 내가 지금 죽게 되었다고. 그러면서 그 손을 내밀 때 손잡아주지 않을 부모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어떻게 되든 말든 일단 물 속에 뛰어듭니다. 자기 몸을 생각지 아니하고 일단 물속에 뛰어들어서 구출을 합니다. 자기 몸은 계산치 아니하고. 거기서 구출될 수 있으면 구출되고 자기가 다 죽으면 죽더라도 상관을 하지 않고 뛰어들지 야 이라면 내가 뛰들면 죽겠다. 야 이거 안 되겠는데 이런 계산은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손을 내밀 때는 전능의 하나님이요. 전지의 하나님이요. 사랑의 하나님이요. 그 분이 손을 내밀지 않을 수가 않을 그런 경우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손을 내미십니다.

그래서 손을 잡고 구원하시면서 뭐라했습니까? 건지면서.  왜 의심하였냐? 믿음이 없는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너가 믿음 문제로 지금 너가 이런 고통을 당하고 물에 빠지는 것이다. 믿음만 있으면 빠지지 않는데.믿음이 있을 때는 물 위로 걸었지 않느냐? 그런데 믿음이 없으니까 이제 물에 빠진단 말이요. 물 위에 걷는다 말은 환난 중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물 위에 걷는 생활이라 그럽니다. 사람으로선 걸을 수 없는 생활아닙니까? 물 위는 사람이 걸을 수 없는 생활이요. 걸음이요. 즉 환난 중에서도 그 자기를 다 부인하고 십자가 지면서 걷는 걸음은 사람으로서는 걸을 수 없는 물 위로 걷는 걸음이라. 그러나 위로를 받으면 다 그렇게 걸을 수 있습니다. 그건 믿음이 없어 그러니까 믿음을 주는 것이 위로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믿음을 주옵소서. 손을 내밀면서. 믿음을 주옵소서 이러니까 손을 잡으시고 그를 건지면서, 너가 물에 빠진 이유는 믿음이 없어 그렇고, 이제 내가 너에게 믿음을 주노라 하니까, 거기서 이제 믿음을 가지니까 함께 물 위로 걸어서 배 위에 올라가게 된 겁니다.

자 여기에 보니까,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겠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면, 그 믿음을 가지면 환난 어떤 큰 환난이라도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그 환난에 파묻히지 아니하고 삼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환난을 기뻐하고, 오히려 환난이 올수록 더 담대해지고,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 두려했습니까? 더 담대했습니까? 더 담대했습니다. 그 마음에 성령으로 위로를 하셔서 감동 감화시키고 위로하시니까 믿음이 충만하게 되니까. 자 우리는 성령의 위로를 받으면 믿음이 충만하게 되고, 성령의 위로를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참 비겁한 자가 됩니다. 비겁한 자, 즉 믿음이 없으니까 두려하는 자가 되고 꽁무니를 빼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못 이깁니다. 환난은. 우리의 힘으로 못 이깁니다. 하나님의 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이길 수 있다. 능히.

그래서 앞으로 시대적 환난이 오고, 뭐 교회적 환난이 오고, 사회적 환난이 오고, 전 나라적 환난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때 다 이게 너무 크다. 이거는 큰일났다 여기서 어떻게 내가 믿음 생활하겠나? 그런 때가 오게 됩니다. 지금은 자그만한 개인 가정적으로, 자기의 몸 신체적으로, 이런 것이 와서 작은 것으로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시키지만도 앞으로 큰 것이 올 때는 그때는 이거 못 이기겠다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이 성구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은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  능히. 위로만 받고 나면 성령의 감동만 받고 나면 완전 다른 사람으로 사도들이 다 변했습니다. 변한 것처럼 우리도 다 능히 다 변할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 보면,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그랬습니다.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나니" 요렇게 깨달아지는 겁니다. 환난이 조그만하게 보입니다. 경하게 보인단 말이요. 작게 보인다 말이요. 가볍게 보인다 말이요. 환난을 만날 때는 환난이 전부 다. 야 환난 이것이 내게는 제일 큰 문제다. 큰 집채만큼 크게 보이고 이것이 중하게 보이고 도무지 이것을 해쳐나갈 수 없게 보이는 그런 환난처럼 보였지만은,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의 위로를 받고보면 잠시 받는 환난이고 이거는 경한 것이다. 잠시 받는 것이다. 이것은. 잠시 받는 것이라. 또 이것의 크기가 환난은 경한 것이다. 이렇게 깨달아지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 하나님 약속한 (것이) 지극히 크다. 지극히 중한 이 영광이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신 약속이 우리에게 있다. 부활의 약속이 있고 영생의 약속이 있고 구원의 약속이 있다.

그때 얻는 약속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약속이고, 지극히 큰 약속이고, 영원토록 계속되는 영생의 약속이다. 자 이것이 깨달아지고 이것이 믿어지니까, 그 땅에 있는 잠시 받는 환란이 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거 아무것도 아니다 여겼다 하면 벌써 두려움이 없어지고 평안이 오고, 오히려 거기서 더 담대함이 생깁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땅에 있는 환난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 크고 중한 이 영광의 중한 것들 생각하니.

또 고린도전사 10장 18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당한 것이 없나니" 그랬습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이 없다. 우리는 어려운 만나면 이건 도무지 감당을 못하겠다. 이 환난은 내가 감당을 못하겠다. 이렇게 해서 그냥 낙망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희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 너희에게 당한 것이 하나도 없고, 전부 다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라. 이길 수 있는 시험이라. 어떨 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 시험이냐? 시험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도 능히 감당하게 하느니라. 이 환난을 능희 감당할 수 있도록 "피할 길을 내사" 자 요 해석을 "피할 길 내사" 할 때 요 해석을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그 환난이 오면 얼른 피해버리라. 피해라. 그 환난을 받지 않도록 얼른 도망가라. 얼른 숨어라.

그래서 신사참배 오면 야 이거 안 되겠다. 빨리 어느 곳으로 피해 버려야 되겠다. 저 만주로 도망가거나 저 환난이 없는 다른 지방으로 나라로 더 피신가거나 그래서 환난에서 능히 해를 받지 않도록 한다.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다고 여겨서 그렇게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피할 길을 내사" 어디로 피하라 했습니까? 자 환난이 나면 어디로 피해라 했습니까? 어디로 도망가라 했습니까? 산으로 도망가라. 산으로. 그럼 산에 가서 그러면 아무도 환난이 못 오도록 숨어 있으란 뜻입니까? 산에 가라 말은 기도하란는 뜻입니다. 유향의 작은 산으로 내가 가리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 환난 때 그 말이요. 내가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이 말은 이 산이라 것은 유향, 기도의 산을 말합니다. 기도하라 그 말입니다. 피하라 이 말은 피할 길을 내사 할 때 요 피하는 것은 도망하라. 어디로? 산으로. 산은 뭐하는 곳인데? 기도하는 것이라. 기도해서 성령을 받아라. 성령의

위로를 받아라 그 말입니다. 성령의 위로를 받으면 능히 감당 하게 하시느니라. 그 우리가 어려움 만나면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그게 피할 길이고, 그것이 성령의 위로를 받는 길이요. 위로받으면 다 해결됩니다. 낙망하는 자가 소망으로 바뀌고, 슬퍼하는 자가 기쁨으로 바뀌고, 두려운 자가 평안으로 바뀌고, 이 다 바뀌고 나면 그 사람은 내나 환경은 그대로 변함이 없지만, 그 사람은 변화가 다 돼버리고 나니까 그 환경은 이제는 아무런 자기한테는 어려움이 안 되는 겁니다. 능히 이기게 해주고 능히 감당하게 해 줍니다.

오늘도 우리가 어떡하든지 위로의 하나님, 즉 성령의 하나님, 우리를 감동 감화시켜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한다. 우리의 믿음없는 우리를 믿게 해줍니다. 자 어떤 사람이 지금 굉장히 마음의 고통을 당하고 낙망 중에 있는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걸 위로 받기 위해서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뭐 이렇게 상담하러 가고 이렇게 카운셀러 한테 가서 이렇게 또 도움도 받고 그래 턱 위로받으니까 마음의 위로가 좀 됩니다. 그런데 그 환난의 근본은 위로가 안 된다 그 말이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고 믿음이 아니고는 그 환난을 근본적으로 해결을 못합니다. 하나님 전능자 하나님이 해결해 주면 해결해주지 누가 해결해 주겠습니까? 전능자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셔서 깨닫게 되고 믿게 되고 알게 되고 그 비밀을 알게 되면 비로소 그 사람은 참 위로를 받는 사람이요. 참 믿음으로 이제 모든 것을 다 해결점을 받게 되는 겁니다.

예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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