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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참 사랑은 영생 뿐이다  
성경본문:42● 누가복음10:25-27
1:23
    230515_월새_ja.mp3 ()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ㄱ)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ㄴ)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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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25-27절 말씀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ㄱ)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언제까지나 이 땅에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육신은 차차차차 후패되며, 결국은 다 죽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이 땅에서는 언제까지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유한한 그런 기간동안만 살기 때문에 그것을 보며, 자연을 보면 다 그러합니다. 그러하지 않는 자연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풀 이파리 하나만 봐도, 아름다운 꽃을 봐도, 작은 미물을 봐도, 큰 이런 존재를 봐도, 이것이 언제까지나 사는 이런 일은 없습니다. 반드시 끝이 있다. 그러니 사람도 수없이 많은 이런 자연을 보면서도, 자기가 이 세상에 끝이 있다는 것을, 늘 보고 깨달아서, 너희들은 이 세상에 언제까지 살 너희들이 아니다. 그러니 없어질 것, 썩어질 것, 불탈 것, 심판 받을 것, 그것 위하여 일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영생이 너희에게 있다. 영생. 영생이란 것은 없어지지 아니할 것, 영원한 것이라. 영어로 말한다면 엔드리스 끝이 없다. 이게 영생이요. 끝이 있는 것은 아무리 좋아도 곧 끝이 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그 좋은 것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거기에는 슬픔이 있고, 거기에는 참 낙망이 있고, 거기에는 말할 수 없는 눈물이 다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공동묘지는 사람이 죽어서 묻어 두는 곳 아닙니까? 공동묘지는 다 눈물의 이런 바가지라. 눈물 바가지. 그러니까 묘지 모양이 바가지 모양으로 다 되어 있으니까. 다 그것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것은 사람은 저래서 죽는다. 끝이 있다. 그래서 그 눈물 바가지라. 눈물이 얼마나 많이 있는 것이 공동 묘지냐? 이 말은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요.

그러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이라도 내가 잘 살자. 이렇게 하는 것은 참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이 땅에 사는 동안이라도 잘 살자 이 말은, 앞으로 영원히 살 길은 없다고 여길 때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도 과거에는 그렇게 살았지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부터는 이제는 영생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 영생을 위해서, 주님의 피 흘리심과 주님의 진리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어서, 능히 영생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이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얼마나 그것이 참 이 세상에 없는 그런 기쁨이요. 소망이요. 이런 능력이요. 자 이런 우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서도 "영생을 얻으리이까?" 자 이런 소망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주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고, 이런 참 소원을 가지고, 여기에 대한 마음이 기울어지고, 여기에 대해서 자기가 애통하고, 여기에 대해서 자기가 기뻐하고, 영생을 얻지 못할 때는 애통하고, 영생을 얻을 때에는 기뻐하고,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영석이는 관심이 없는 사람, 이 땅에 없어질 것, 다 불타고 썩어질 것, 거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니, 영생을 얻을 자가 어디 있느냐?

영생이란 것은 먼저 영생을 소망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그 다음에 영생을 얻는 일은 그 다음에 하게 됩니다. 영생을 소망하는 일이 없는데, 영생을 얻기 위한 그런 노력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영생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됩니다. 영생이 얼마나 내게는 귀하냐? 영생 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느냐? 이런 평가가 자기 속에서 나와야 그 영생을 소망하게 되고, 그래서 여기에 영생을 소망하는 기독자가 되어야 되는데, 항상 주여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리까? 이런 기독자가 되어야 되는데, 주여 어떻게 하면 나는 이런 많은 물질을 내가 가질 수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은 집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여 내가 어떻게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내가 가질 수 있습니까? 그렇게 소원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이 땅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거기에 수고를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영생에 대한 소망을 얼마나 가지느냐? 영생의 소망을 너는 주먹만큼 가지느냐? 너는 몸뚱이만큼 가지느냐? 집채만큼 가지느냐? 너는 큰 이런 우주만큼 가지느냐? 이 영생의 소망이 큰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수고하는 노력도 많을 것이고, 영생의 소망이 적은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한 노력도 적을 것이고, 이 땅에 있는 소망을 가진 사람은 땅에 있는 것을 얻는 수고를 할 것이고, 이 땅에 있는 것을 강하게 이렇게 소원 하는 사람은, 이 땅의 것을 얻기 위한 수고도 많은 것이고. 그러니까 무엇을 소망하느냐? 네 속에 영생을 소망하는 소망이 있느냐?  세상을 소망하는 소망이 있느냐? 어느 것을 소망하느냐? 그래서 소망의 따라서 그 사람의 노력의 종류가 결정되고, 노력의 정도가 결정이 됩니다. 영생을 소망하는 사람은 영생을 위해 이런 행위를 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가 영생의 소망을 가진 만큼 노력의 고 양도 그렇게 결정이 됩니다.

=====자 영생의 소망은 어떻게 가집니까? 우리가 영생에 대한 지식을 알아야 영생의 소망을 가집니다. 평생 영생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는데, 영생이 뭔지도 모르는데,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척 보니까, 전부 다 썩어 질 것 뿐이니까, 썩어지는 것이 정상으로 보이는 겁니다. 다 썩어지고 다 없어질 그 속에 있는 것이, 하나도 그것이 이상스럽게 보이지 아니하고, 당연하게 사람은 나고 죽는 것이지 뭐, 다른 길이 있나? 영생은 없으니까, 이거는 원래 없는 것이니까,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기를 못합니다. 나고 부터 전부 다 썩어질 것 가운데서 있다 보니까, 그것이 전부인 줄 아는 겁니다. 다른 길은 없는 줄 압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태어나면 그 어릴 때 받은 교육이 전부라. 거기에는 북한이 제일 잘 사는 나라 인줄 압니다. 제일 못 사는 나라가 그 안에서만 살다 보니까, 제일 잘 사는 나라인 줄 알고, 그 안에서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아도 이보다 더 좋은 나라가 없다. 이렇게 사니까, 평생 그 사람은 그 생활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우연히 중국으로 나가서 중국을 보니까,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그 어떤 사람이 탈북한 건 아니고, 그 사람이 중국에 잠시 이렇게 그냥 나가서 구경하기로 하고, 친구 따라서 그때 거기 가니까, 밤에 도착을 했는데 이거는 신세계라. 이 북한은 다 밤 되면 캄캄 어둡고 불빛이 없는 그런 곳인데, 이 중국에는 보니까 밤이 되면 이런 휘황찬란한 이런 불이 있으니까 벌써 거기에 그냥 이런 세계도 있구나. 그래 가지고 그 때부터 눈이 조금 뜨여서, 북한이 제일 잘 사는 나라 줄 알고, 제일 좋은 나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비로소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이제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런 것을 듣고 알고 보니까 더 놀라는 겁니다. 영생을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세계를 소원 할 수도 없고, 그 소원한 것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영생의 소망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 영생의 소망을 이루려 하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영생을 가질 수 있도록 자기가 무슨 어떤 노력을 한다고, 영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뭡니까? 사람의 죄 때문에 그런 겁니다. 죄가 있으면 영생은 안 됩니다. 죄가 있으면. 이 죄는 우리 나라에 있는 이런 법률에 저촉되는 그럼 죄가 아니요. 미국에 있는 그 나라의 법에 저촉되는 그런 죄도 아니요. 저 아프리카에는 나라의 그 법에 저촉되는 그런 죄도 아니요. 어떤 죄입니까? 하나님의 법에 저촉이 되는 죄입니다. 모든 인생이 하나님으로 부터 나왔는데, 하나님이 세운 법에 저촉이 되는 그 죄로 인해서, 영생을 가지지 못한 것이 되었다. 지금까지 왜 영생을 갖지 못하느냐? 하는 이유가,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 그 죄값으로 그렇다 말이요. 죄값으로. 이제야 영생을 받지 못하는 그 원인을 알게 됩니다. 죄 때문에. 또 그 다음에는 뭐 때문에 뭐 때문에 그렇습니까?.  의 때문에, 의가 없어서, 하나님을 따라 믿고 순종하는 믿음과 순종이 없어서, 또 그 다음에 세 번째는, 하나님과의 화친이 없어서. 하나님과 원수 되어 놓으면 그 하나님의 영생은 얻지를 못합니다. 영생의 세계를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 영생을 자기가 가지기를 못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문제가, 얼마나 큰 인생의 불행인지 모른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지은 죄 때문에, 또 의가 없는 불의 때문에, 또 하나님과 화친이 없는 불목 때문에, 이것 때문에 인생은 영생을 얻지는 못합니다. 원래 하나님은 영생하도록 지었는데, 사람들이 죄를 지음으로 인하여, 불의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불목됨으로 인하여, 인생은 영생을 얻지를 못합니다. (타락의) 순서로서는 먼저 불목이 되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버리는 불의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이 일이 되어서, 이래 가지고 결국은 죄짓는 그것으로 완성이 완결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망이 온 것이고, 그래서 사람이 영생이 없는 겁니다. 비로소 과거에는 몰랐지마는 말씀을 들어 보고 또 들어보니, 사람에게 영생이 없는 이유 까지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영생이 없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는데, 그 영생이 없는 그것으로 살면, 영원한 형벌인 죽음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아무리 죄를 지어도, 아직도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는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땅을 떠나는 그 순간에는 영원한 형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이 사망에서 벗어난 영생이 얼마나 귀하고 중한 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고, 그 영생을 얻지 못하고, 사망을 얻게 된 원인까지도 알게 되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이제 영생을 얻는 일보를 걸은 겁니다. 그 사람은 일보를 걸었다. 왜 사망이 왔는지? 왜 인생이 이렇게 다 죽는지? 원인 그것까지 알고 나니까, 그 원인을 해결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제는 해결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인생의 죄를 없앨 수는 없고, 우리의 불의한 것 대신에 의가 있도록 할 수가 없고,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이 하나님과 화친됨을 가질 수가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사활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다 이것을 다 해결했다 말이요. 죽으심으로. 죄도 없지. 의도 있지. 하나님과 화친도 있지. 이제는 이것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생명만 있으면 됩니다. 이제는 살 수 있는 조건은 다 되어 있지만, 생명만 있으면 되는데, 생명이 없어서 아무리 다 완결된 조건이 돼도, 생명이 없으면 누리지는 못 합니다. 생명 주실 때 그 예수님이 대신 부활하신 겁니다.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줬다. 왜? 이 죽으심으로 이룬 세 가지를 누리고 살 수 있는 요 생명을 주신 겁니다. 이제 생명이 있으니까

사죄를, 죄 없는 것을 누리고 살 수 있고, 또 의를 누리고 살 수 있고, 하나님과 화친됨을 누리고 살 수가 때문에, 그래서 생명 주신 은혜가 예수님의 부활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로 "중생하게 하심과" 그랬습니다. 중생은 영이 생명 얻는 것 아닙니까? 영이 생명을 얻으니까, 이제는 사죄를 누릴 수가 있고, 칭의를 누릴 수가 있고, 화친을 누릴 수가 있는 겁니다. 자 이것까지만 해도 이제 우리로서는 하나님에게서 한없는 은혜를 받은 자요. 이미 받은 자라 그 말입니다. 사죄도 받은 자지. 받을 자가 아니고, 우리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택자는 다 받았습니다. 과거사 입니다. 과거사. 이미 받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느냐? 못 사느냐?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고, 자 받았고, 또 우리에게는 영이 중생하는 이 중생한 이 생명을 받았습니다. 받을 것이 아니고 이미 받은 겁니다. 그 사람이 지금 죄를 짓든 안 짓든 상관없이, 죽으심의 대속의 공로도 받았고, 또 주님이 우리 영을 중생 시킨 이 구원도 받았고, 자 이 받은 은혜, 이것을 자기가 믿고, 하나님께 찬송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믿고 찬송하는 사람. 이것을 믿어야 되지, 안 믿고는 찬송 할 수 있습니까? 믿고 찬송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고. 또 그 다음에는 우리에게 받은 이 생명미 아니고, 받을 생명. 앞으로 받을 생명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영생이라.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다시 사는 요 영생이라. 이 심신의 육이 다시 사는 것이 바로 영생이라. 이거든 받은 것이 아니요 법적으로 팔았지만 실상은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받을 수 있는 생명입니다. 영생은 받을 수 있는 생명. 그래서 이것도 소망으로 주셨다. 소망으로. 소망이란 말은 현재 받은 것을 가지고 소망이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받을 수 있는 거 미래의 받을 수 있는 것. 조건은 뭡니까? 반드시 이미 받은 이 은혜 대해서 믿고 감사 하는 것이 밑바탕이 돼어야 됩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그 말입니다. 이미 초신 그 생명의 은혜 죽으심으로 주신 은혜 이 공로로 인하여 이 생명을 주신, 영이 생명 받은 요 중생 이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고, 여기에 대해서도 늘 믿고 참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될 때, 그 다음에는 받을 생명, 그것을 산 소망이라. 산 소망을 주신 은혜, 이거는 영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 조치를 해놓고, 너는 오직 믿고 행하기만 행하면 너는 이 영생을 가질 수가 있다. 이 소망을 이룰 수가 있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영생이라는 것은 이런 겁니다. 우리에게 기본 구원을 먼저 다 주시고, 이 은혜 위에 이제는 산 소망, 영생의 소망을 주셨다. 이 산 영생의 소망은 먼저 기본적으로 주신 주님의 사활의 대속과 이 중생한 이 생명의 이 은혜를 믿는 그 사람이 먼저 되어야 된다. 그 믿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라 그랬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그 믿음. 그런데 마음으로 믿는 그 믿음이 그것이 온전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행해야 된다 그랬습니다. 행해야. 그래서 행함은 믿음을 어떻게 한다 했습니까? 온전케 하는 것이라 그랬다 말이요. 온전케 하는 것이라. 믿으면 구원 얻는다 이 말도 맞고, 믿고 믿고 행해야 구원 얻는다 그 말도 맞습니다. 왜? 믿으면 구원 얻는데, 그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되면 구원 얻는다. 그 말입니다. 온전한 믿음 어떤 겁니까? 행하는 믿음입니다. 행할 때 온전하게 된다고 했으니까? 자 그러면 행함의 온전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행함도 종류가 있는데 외식으로 행할 수 있고, 얼마든지 행할 수 있는데, 그 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심사를 합니다. 이 행하는 것이 온전하냐? 온전하지 않느냐? 너희 행함의 온전한 것을 내가 찾지 못했다. 행하기는 행하는데, 다 그것은 왹식으로 행하는 것이고, 온전치 못 하게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는 소망을 이룰 수가 없다. 너는 이 심신의 기능 구원을 너는 이룰 수가 없다. 받을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행함의 온전함까지 되었을 때, 비로소 영생을 우리는 받을 수가 있고. 얻을 수가 있는 겁니다.

자 그러면 행함의 온전은 어떻게 하는 것이 행함의 온전이냐? 행함의 온전은 겉으로는 사람을 사랑하는 이 행위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사랑해라 하는데, 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면이요. 이 면이 없으면 그 사람은 온전한 행위가 안됩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을 사랑하려면, 그 이전에 무엇부터 돼야 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 있고,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냥 하나님 없이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육체의 사랑으로 끝이 나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해도 육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리 사랑해 봐야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이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고 사랑으로 인해서 사람을 사랑할 때.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요. 사람을 사랑한다니까 뭘 입을 것 맛있겠다 도와주면 것이 육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이것은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이 육체로 사랑해 준 것이 그것이 들어서 나중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에게 전해 줄 때, 그제서야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그게 사랑이 됩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에게 주님의 죽으심의 은혜와 부활하심의 은혜와 또 진리를 주신 은혜를, 그에게 전해 줄 때 비로소 그들이 믿을 때 그 사람이 영생이 되니까,

영생을 주는 이 사랑이 참 사랑이라. 영생이 안 되는 사람은 참 사랑이 아니다. 이래서 우리는 영생이라는 참 사랑을 줄 수 있도록, 주님의 사랑을 먼저 우리가 받아서 이것을 가지고 사랑을 해야 됩니다. 내가 받은, 주님에게 받은 이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해야 된다. 결국은 이 믿음이라는 것은 들음에서 나니까,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 사랑이요. 그 사람이 말씀을 듣게 할 때 그 사람이 믿음이 생기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떻하든지 말씀을 듣도록, 읽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도록, 이것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그렇게 행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영생을 하기 때문에. 그러면 이런 사람이 듣고 읽고 하려면 육체가 보존이 돼야 될 거 아닙니까? 육체가 보존되려면 자기 스스로 육체를 보존 할 수 있으면 좋지만, 자기 스스로 육체를 보존을 못 하니까, 그 육체가 보존되도록 하기 위해서 먹이고 입히고 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먹이고 입히고 하는 목적은, 내가 먹고 입고 하는 목적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믿음으로 살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밑바탕으로 생각해야지.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면 그런 사랑 본체가 아니고, 사랑을 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하지 그것은 사랑의 본체가 아닙니다. 사랑의 본체는 그에게 주님의 이 대속의 은혜를 전해 줄 때, 진리와 성령의 은혜를 전해 줄 때, 그것이 들어서 그 전달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행할 때 영생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영생은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요 사랑의 사람이 먼저 되고 난 뒤에,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해야 된다 이것을 가르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 2일까지 오면 되는데.

=====그래서 최종 사랑의 완성은 이렇게 행하기는 행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지마는, 다해서 하느냐? 남겨두고 하느냐? 하는 겁니다. 충성이냐?충성이 아니냐? 충성으로 해야 그것이 사랑이 되는 겁니다. 영생을 얻는 사랑이 됩니다. 충성이 없으면 안 됩니다. 여기에 뭐라고 했습니까? 마음 다하고, 목숨 다 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내 몸과 같이 생각해서, 그래서 사랑해라 했으니까 여기서 미달이 돼버리면, 그만 그 사람은 앞에 이 영생을 얻지를 못하고, 다른 사람도 영생을 얻지를 못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떠하든지 이 소망을 가집시다.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이 영생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이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합니다. 또 이렇게 사랑할 때 다 해서 충성으로 사랑을 하는 것이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 위하여 충성을 하신 겁니다. 다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해서 해야만 충성을 다할 때 받을 수가 있고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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